다시, 글쓰기 모임

-서촌 그 책방

by 술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버스를 타고 경복궁역에서 하차. 건널목을 건너고 골목길을 10분 정도 걸으면 도착. 휴대전화로 네이버 지도 동선을 살핀다. 엄지와 검지로 화면의 골목길을 늘이고 줄이며 어디쯤에서 꺾어야 하는지 확인한다. 전날 밤 검색을 했지만, 출발하기 전에 다시 한번 점검한다. 넉넉하게 1시간이면 되겠다. 누가 보면 이 동네 처음 가는 사람인 줄 알겠다. 학교 다닐 때 5년을 넘게 매일같이 다니던 길인데…. 하긴, 벌써 졸업한 지 10년이 넘었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니 모르는 동네가 맞겠다.

경복궁역 주변은 온통 처음 보는 가게들이었다. 원래 있었던 곳인지, 새로 생긴 곳인지는 모르겠다. 익숙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토속촌 삼계탕’ 허름한 간판 덕분에 오래된 동네가 더 오래되어 보인다. 동네가 간판 덕을 보는 건지 간판이 동네 덕을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가게는 여전히 전통을 자랑하고 있나 보다. 7년 전. 연애할 때, 신랑은 유명한 삼계탕집이라며 데려갔다. (사실, 이미 나는 알고 있던 곳이었지만) 우리는 삼계탕을 먹고, 근처를 잠시 걸었고 이날 신랑은 나에게 사귀자고 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이따가 신랑에게 보낼 생각으로 간판 사진을 찍어두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한옥 골목길을 따라 잠시 걷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옥에 ‘책’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보인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몇은 자리에 앉았고 몇은 서서 서점에 진열된 책을 본다. 우리는 글을 쓰려고 모였다. 오늘이 글쓰기 모임의 첫날이고, 나에겐 두 번째 글쓰기 모임이다.

나의 첫 글쓰기는 작년이었다. 엄마와의 추억을 글로 남기고 싶어 책으로 만들었다. 내 주제에 무슨 글인가 싶어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못했다. 엄마에게도 책이 나오는 날 말할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죽기 전까지도 얘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뭐라고 이렇게 비장하게 비밀로 할 각오였는지) 암튼, 신랑과 친한 언니에게만 얘기했다. 그 후로 신랑과 언니는 이제 ‘작가님’이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그냥 뭣도 아니라고 그만하라고 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당시, 내 마음속엔 ‘작가 코스프레’ 같은 것이 생겼던 것 같다. 차마, 티를 내지 못했는데 주변에서 먼저 우쭈쭈 해주니 못 이기는 척하면서 즐기기도 했다. 아마도 ‘주부’라는 타이틀보다 그럴싸해 보여 마음에 들었을 테지. 글이 써지지 않을 때 노트북을 들고 근처 카페에 가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자면 정말 작가라도 된 것 같았고, 멍 때리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응당 필요한 시간인 것 같았다. 쓰다 말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책이 나온 날, 엄마가 울면 어쩌지 싶었는데 막상 운 사람은 엄마가 아닌 나였고 그때 깨달았다. 엄마를 위한답시고 시작한 글쓰기는, 나를 위한 글쓰기였다는 걸. 그래, 내가 누굴 위하나, 나나 잘하면 될 일이다. 아. 물론, 엄마도 좋아했다.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그래서 이 책은 몇 권이나 있는 거야, 어떻게 살 수 있어? 엄마 한 4권만 줘봐.”라고 말한 걸 보면.

그 후로 글을 놓고 싶지 않은데, 방법도 모르겠고 뭘 써야 할지 몰라서 일단 읽기라도 했다. 잘 쓰고 싶어 시작한 읽기인데 이상하게 좋은 글을 읽을수록 한 글자도 쓰기가 어려워졌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글을 쓰지. 이 단어를 이 문장에 넣는다고?! 매일매일 책이 쏟아져 나온다.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차고 넘치는데 나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 난 무얼 쓸 수 있을까. ‘감히, 나 따위가?!’ 차라리 ‘작가 코스프레 병’에 걸렸을 때가 나으려나.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잔뜩 겁먹은 나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글’과 ‘사람’이었다. 신랑은 다음 작품은 언제 나오냐, 이번엔 이런 이야기를 써보는 건 어떻냐며 의견을 주었고 책을 본 친구들은 내가 글을 계속 쓰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에서 외국의 여성 소방관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그녀는 70층 높이에서 두 줄의 얇은 와이어에만 의지해 서 있었다. “첫 발자국을 떼는 건 기적 같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두 걸음, 세 걸음쯤 걷고 나자 그냥 보통 평지를 걷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그러니까 두려움에서 용기까지는 두세 걸음이면 충분했다.” 나는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용기는 두려움의 반대편이 아닌, 아주 조금 옆에 있었다. 한두 발자국이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 서촌의 한 서점에 앉아있다. 첫날이라 자기소개를 했다. 다들 다른 사람이 소개하는 동안 각자의 노트 혹은 태블릿에 메모한다. (다들 무슨 말을 적었을까, 나에 대해선 뭐라고 적혀있을까) 우리는 지금 각자의 두려움 앞에 서 있는 것일지 모른다. 오늘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곧 함께 손을 잡고 용기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서로에게 용기가, 위안이 되겠지. 아니, 여기에 온 것만으로 벌써 용기로 향하는 한 발자국을 내디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추측하건대 처음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려웠다면, 나중에는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 몰라 어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분명, 한 글자도 써지지 않아 며칠을 보냈는데 이제는 글은 장황해지는데 멈추질 못하고 있다.) 바란다면, 나만의 생각을. 나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보기에 그럴싸하진 않더라도, 나 다운 언어를.

자기소개, 6주간의 과정 안내 후 첫 모임이 끝났다. 모처럼 날이 좋다. 광화문역까지 걸어가야겠다. 아, 아까 찍어둔 ‘삼계탕 간판’ 사진을 신랑에게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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