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합니다.

by 술술

늦은 오후, 신랑과 점심 설거지를 마치고 식탁에 둔 휴대전화기를 확인한다. 잠금화면에 택배 카톡 알림이 와있다. 알림은 택배 회사 이름만 보이기 때문에 어떤 택배인지 알 수 없다. 딱히 올 게 없는데 책인가? 휴대전화기에 얼굴을 쑥 들이밀고 잠금을 풀어 카톡을 확인한다.

‘감자, 오후 4~6시 도착 예정, 보내는 사람 이 00’

어머님이 감자를 보내신 모양이다. 시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신다. 덕분에 우리는 철마다 햇 00을 공급받는다. 쌀, 콩, 들깻가루, 들기름,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을 수확하자마자 보내신다. 보통 무언가를 보내시기 전에 나나 신랑에게 카톡이나 전화로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보시는 데 이번엔 아무 말 없이 보내셨다. 어머님이 물어보실 때마다 우리가 ‘괜찮다, 우리가 다음에 가서 가지고 올 테니 그냥 두시라.’고 해서 그런가.

기다리는 게 있으니, 시간이 더디 간다. 부모님이 농사지으신 농작물을 택배로 받을 때는 더 그렇다. 작년 옥수수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 8월 어느 날 저녁 9시쯤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혹시, 택배가 도착하지 않았냐고 하셨다. 옥수수를 보냈는데, 다른 형제들은 다들 받았다고 연락이 왔는데 우리만 연락이 없어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하셨다. 나는 인터폰이나 똑똑 소리를 (가끔 택배 기사님들은 벨 대신 현관문을 두드리고 가시기도 한다) 듣지 못했으므로 ‘오늘 종일 집에 있었는데, 택배 온 건 없었어요.’라고 대답하며 현관문을 열었는데, 아뿔싸 현관문 앞에 상자가 떡 하니 있는 게 아닌가. 어머님은 옥수수를 따기 전날 비가 와서 물기가 있을 수 있다고 걱정하셨기에 나는 급히 상자를 열었다. 얼핏 봐도 20개는 넘어 보였다. 손으로 만져보니 물기에 습기까지 더해져 옥수수 겉껍질이 눅눅했다. 생명력을 잃어가는 옥수수를 살려야 했다.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나는 의사라도 된 듯, 현관에 신문지를 펼치고 비장한 눈빛으로 옥수수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1~2겹만 남기고 나머지 껍질을 거침없이 벗겼다. 확인이 끝난 옥수수들을 지체하지 않고 냄비로 옮겼다. 냄비 2개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2번에 걸쳐 쪄냈다. 그때 온몸에 흐르던 땀은 더워서인지, 긴장해서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요즘은 택배 알림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 이런 일은 거의 없다. ‘배송 출발, -시 도착 예정, 도착 완료’ 알림이 오고 회사에 따라 문 앞에 택배를 놓은 사진까지 보내준다. 다른 나라 택배 서비스도 이럴까. 불과 1년 전인데 우리나라의 기술력에 새삼 놀랍다는 생각이 들다가 이 또한 코로나로 인한 발전인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4시가 조금 넘었을까. 택배 도착 완료 카톡 메시지가 왔다. 택배 기사님과 직접적인 접촉은 피해야 하기에 5분 정도 틈을 두고 현관문을 연다. 문 앞에 작은 상자가 놓여있다. 나는 비밀요원처럼 주위를 살피고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상자를 현관 안에 넣으러 발로 민다. 어랏, 묵직하다. 살짝 불안감이 엄습한다. ‘감자가 얼마나 들어있는 걸까? 이 안은 다 감자인 걸까?’ 어쨌든 제시간에 받는 건 성공이다. 첩보영화였다면, 택배 기사님에게 ‘굿좝’이라고 말하며 엄지를 들어 보였을 테다. 이제부터는 나의 미션이다. 일단, 어머님께 감자 무사 도착 보고를 드려야 한다.

통화 중이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플랜 B는 카톡이다. ‘잘 받았습니다. 감자합니다. 날도 덥고 무거운 데 택배 보내시느라 힘드셨겠어요. 잘 먹겠습니다.’

전송을 누르기 전에 읽어본다. ‘감자 합니다??’ 나는 분명 ‘감사합니다’라고 눌렀는데, ‘감자’라고 적혀있다. 아이폰은 가끔 터치 오류로 오타가 나거나, 제멋대로 자동완성이 되기도 한다. ‘감사’를 하필 ‘감자’로 적다니, 혹시 내 무의식 속의 감자를 아이폰이 읽은 걸까. 이렇게까지 나랑 동기화되어 있다고?! 솔직히, 나는 감사할 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우리 집에 이미 2박스의 감자가 있기 때문이다.

‘신에게는 이미 2박스의 감자가 있소.’

1박스는 엄마가, 1박스는 시골 친할머니께서 보내주셨다. 얼마 전부터 엄마는 친구분의 밭에서 재미 삼아 이러저러한 것들을 심는다고 했다. 감자, 과일, 오이, 호박, 상추 등. 봄마다 산으로 들로 나물 캐러 다니는 것도 모자라 이제 직접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는 주말마다 들르는데 매번 보내주는 사진을 보면 곧 귀농하겠다고 하는 건 아닌지 싶었다. 갈 때마다 아이들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며, 잘 자라줘서 얼마나 기특하고 장한지 모르겠다고 한다. 누가 들으면 손주 얘기인 줄 알겠다. 그래, 다른 친구분들처럼 자랑할 손주도 없는데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싶어 차마 적당히 하라는 말도 못 한다.

자신이 처음 농사지은 햇감자니 얼마나 자식에게 먹이고 싶었을까. 엄마는 전화로 강원도 땅이 좋아서 그런가, 감자가 엄청 맛있다며 강원도 감자 부심을 보이며 다음에 집에 와서 가져가라고 했다. 가장 맛있을 때 먹이고 싶은 마음이 어떤 부모라고 다를까. 엄마, 시골 친할머니, 어머님께서 차례로 감자를 보내셨다. 매주 십시일반 보내주신 감자가 적금 붓듯 차곡차곡 우리 집에 모였다. 강원도 감자, 경상북도 감자, 경기도 감자.

문제는 ‘양’이다. 엄마가 재미 삼아 소소하게 한다고 했을 때 의심했어야 했다. 엄마의 마음은 ‘재미’ 일지 몰라도 ‘재미’로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아니, 처음엔 ‘농사’라는 표현도 하지 않고, 그냥 ‘몇 개’ 심었다고 했다. 엄마들의 공통 언어에 ‘적당히’ ‘조금’ 말고 ‘재미 삼아’ ‘소소하게’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며칠 전에 본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친구들끼리 각자의 엄마가 싸준 반찬 얘기를 하는 장면이었다. 한 친구는 엄마가 장아찌를 종류별로 엄청나게 싸줬다며, 혼자 먹는데 누구 먹으라고 이렇게 많이 싸준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우리 집에는 깻잎 5,000장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둘은 서로 부모님에게 받은 반찬을 바꿔먹기로 했다. 지금 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감자를 바꿔먹을 수 있는 동네 친구다.

그런데 내 곁엔 동네 친구도 없고 냉장고엔 엄마가 해준 장아찌도 깻잎도 있다. 그래, 하루에 1끼는 감자를 먹자. 강원도, 경상북도, 경기도 각각 다른 맛이 날지도 모른다. 하늘 아래 같은 감자는 없다! 괜히 생긴 것도 크기도 다 달라 보인다.

아주 다행인 것은, 신랑은 감자를 좋아한다. (이 사실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줄이야) 선입선출 원칙으로 가장 먼저 받은 엄마의 강원도 감자부터 쪘다. 갓 찐 감자는 그냥 먹어도 달큼하다. 감자를 먹으며, 인터넷으로 ‘감자 요리’를 검색한다. 달걀 감자 샌드위치, 감자 짜글이, 감자볶음, 감자채 전, 감자된장찌개, 감자조림, 감자 수프, 토마토 감자 스파게티, 감자칩, 짜장, 카레...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모든 게 가능했다. 감자가 이토록 변화무쌍하고 세계적인 식재료였던가.

몇 시간 뒤, 어머님의 카톡 답장이 왔다. ‘얼마 안 되니 더 갖다 먹어.’ 어머님이 내 속사정을 아실 리 없으니 나는 혼자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문득, 전국에 감자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들은 다들 햇감자를 자식들에게 보냈을까 궁금해진다. 5월 가정의 달 행사로 마트 홍삼매장에 걸려있는 문구가 생각난다. 5월이 홍삼이라면 7월은 햇감자. ‘7월엔 햇감자로 사랑을 표현하세요.’ ‘사랑한다면, 7월엔 햇감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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