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면 되는 일

by 술술

슉-

휴대전화 화면 위로 하얀 네모 상자가 떠오른다. 새 메일이 왔음을 알리는 배너다. 나는 메일을 확인함과 동시에 신랑이 있는 작은 방으로 곧장 달려들었다.

“신랑~”

내가 앉아 있던 거실 소파에서 신랑이 있는 작은 방까지 냅다 뛴다. 내가 이렇게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나 싶은데, 미처 몸이 도착하기도 전에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재즈 같다는 게 무슨 말이야?!”

신랑은 책상 앞에 앉아 두 손을 키보드에 올린 채, 눈만 동그랗게 날 쳐다보고는 곧 흔들림 없는 침대처럼 안정적인 목소리로 답한다.

“글쎄…. 예측할 수 없다?”

나는 신랑의 대답에 어쩐지 살짝 기운이 빠진다. 기대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원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밑도 끝도 없이 물어봤으니, 대답이 썩 들어맞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질문을 고쳐 다시 묻는다.

“그럼, 글이 재즈 같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재즈는 연주자마다 다양하게 연주하잖아. 같은 연주자라도 그때그때 즉흥으로 하기도하고. 글이 다음에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거 아닐까?”

글의 전개가 생뚱맞다는 건가 아니면, 신선하다는 건가. 지금 재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얼마 전에 본 애니메이션 ‘쏘울’과 공부할 때 듣는 유튜브의 재즈 스트리밍이다. 애니메이션도 재미있게 봤고, 재즈를 들으며 공부할 때 적당한 내적 흥분과 집중력을 얻기에 일단 나에겐 좋은 느낌이긴 하다. 그래도 당사자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아, 휴대전화를 열었다.

사실, 나는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신랑은 아무리 좋은 글도 갖고만 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커뮤니티 같은 곳에 글을 올려보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식으로 출판을 하거나 유명해진 작가도 있다고 했다. (너무 유명한 사람들이라 누구라고는 차마 말도 못 꺼내겠다) 신랑은 다양한 커뮤니티를 알려주었지만, 글마다 달린 100개가 넘는 댓글들을 보니 겁부터 났다. 나는 아직 세상 밖으로 나갈 자신은 없었다. 내 글을 내어놓을 자신도, 댓글들을 감당할 자신도.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자신도 없었기에 온실과 바깥세상의 중간지대를 찾기 시작했고, 에세이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다. 사이트에 매달 질문이 올라오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글을 자유롭게 적어서 올리는 것이다. 주최 측에서는 올라온 글 몇 개를 선정해서 질문과 어울리는 책을 선물로 준다.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30~50명 정도이고, 참여자들은 서로의 글에 댓글을 남길 수 있다. 이 정도 세상이면 나가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며칠 전 처음으로 글을 올렸는데 댓글이 달린 것이다. 나의 첫 글, 그리고 내 글이 재즈 같다는 첫 댓글.

댓글이 달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너무 뜻밖이라 당황하고 그 댓글의 의미를 알 수 없어 또다시 당황한 것이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답글을 달았다. ‘재즈 같은 느낌은 어떤 걸까요?’ 답글을 달고 나니 시간이 왜 이렇게 더디 가는지.

‘지잉-’ 진동이 울린다. 답글이 달리긴 달렸다. 그런데, 희한하다.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답글을 남겼다. 내 글이 재미있다는 감상과 함께 재즈는 하루키의 젊은 산문 스타일 같다고 남겼다.


하루키? 내가 아는 하루키는 한 사람밖에 없는데, 이 하루키가 그 하루키인가?! 내가 하루키에 대해서 아는 건 오빠 방에 있던 낡은 ‘상실의 시대’ 책이다. 심지어 내가 그 책을 기억하는 이유는 다 읽지 못하고 덮었기 때문이다. 신랑에게 물어봤는데, 나와 비슷했다. 상실의 시대를 읽긴 했지만, 어려웠던 기억이 남아있다고 했다.

잠시 후, 신랑은 보여줄 게 있다며 나를 불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인데 누군가 하나의 문단을 ‘유명한 작가들의 문체’로 변형시켜 적은 것이다. 캐리커처처럼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작가들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글 밑으로 공감하는 댓글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난 그들과 함께 웃지 못했다. 하루키를 잘 모르니 어디가 웃음 포인트인지 알 수 없었다. 내 글, 재즈, 그리고 하루키의 연결성은 결국 풀지 못한 미제 사건처럼 어딘가 찝찝한 채로 점점 희미해졌다.

그런데 그 후로, 하루키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1달에 1번 있는 글쓰기 모임에서 S가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책을 추천했는데,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이었다. 그리고 R 역시 이미 그 책을 갖고 있다며 덕분에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밀리의 서재라는 독서 구독 서비스에서 이번 주 새 책으로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라는 책을 추천했다. 하루키가 잊히기를 거부하는 건지, 내가 잊고 싶지 않은 건지. 어쨌든, 지금이 하루키 미제 사건을 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라는 책을 대여했다. 부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배우는 ‘맛있는 문장’ 쓰는 47가지 규칙이다. 하루키가 쓴 줄 알았는데, 저자는 나카무라 구니오라는 사람이다. 하루키라는 단어만 보고 저자가 누군지 보지도 않고 냅다 빌린 것이다. 하루키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왠지 아쉬웠다. 그런데 저자 소개를 보니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1971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프리랜서 영상 디렉터로 다양한 TV 프로그램을 연출하다 2008년부터 도쿄 오기쿠보에서 북카페 ‘로쿠지겐(6차원)’을 운영하고 있다. 로쿠지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하며 노벨문학상을 발표할 때 TV 중계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독서회, 미술관 및 출판사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되는 토크 이벤트 등을 기획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하루키의 언어》(공저), 《산책하면서 즐기는 무라카미 하루키》(공저), 《마법의 문장 강좌》 등이 있다.


<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의 저자 소개 발췌>

4권 중 3권의 책 제목에 ‘하루키’가 들어간다. 이 정도면 하루키 전문가를 잘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며칠 내내, 다른 책은 읽지 않고 이 책만 읽었다. 그리고 단서가 될 만한 문장은 노트에 적었다. 내 글, 재즈, 하루키로 연결된 미제 사건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책에는 ‘재즈’가 직접 등장하는 부분도 있었다.

‘25 팝적인 키워드를 여기저기에 써넣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문장에 대한 대부분을 음악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서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은, 그리고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문장을 계속 읽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리듬의 중요성을 음악에서(주로 재즈에서) 배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중에서 >

책이 끝으로 다다를수록, 나도 점점 답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쩐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접근법이 잘못되었을지도 몰라. 나는 내 글과 댓글을 다시 봤다. 다른 각도로 보면, 사건은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아……!’

‘재미있는 글입니다. ㅎㅎ’ ‘재즈 같은 느낌의 글이에요 ㅋㅋ’ ‘좋은 글이에요^^’

묘하게도 재즈와 하루키를 빼고 나니 ‘재미있다’라는 말과 감상 뒤에 ‘각종 웃음’이 보였다. 그들은 내 글을 재미있게, 즐겁게 읽었다. 내 글이 ‘왜’ ‘어떻게’ 재즈와 하루키로 연결되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내 글에 ‘답’을 했고, 내 글에서 누군가를 떠올릴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신랑에게 한달음에 달려갈 정도로 나를 설레게 한 것이다. 온실 밖으로 내딛는 첫 도전에서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나는 처음 댓글을 봤을 때보다 더한 감사함과 벅참을 느꼈다. 그리고 계속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한사람이면 충분하구나.’ 사람을 살리는 일도, 사람을 상처입히는 일도. 그 사람이 내 글을 다시 봐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그 첫 댓글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다음 글을 써 내려갈 것이다. 이렇게 쓰는 것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나만의 문체와 색을 가진 글을 쓸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채로.


덧붙이자면, 이 글을 발행해도 될지 무척 고민했다. 아니 이 날의 느낌을 적고 싶은데, 혹시 '하루키' 단어 만으로 여러 오해가 생기진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하루키'를 빼고서는 절대 글을 완성할 수 없었다. '하루키' 대신 'ooo'이나 가명을 써볼까도 했지만, 어쩐지 더 눈에 띌 것 같았다. 읽는 내내 'ooo'이 무엇인지 풀고 싶어지거나, 아니면 이 글이 뭔 소리인지 모르겠거나. 나는 여러 고민 끝에 '읽는 사람'들을 믿고 '하루키'를 공개했다. 더구나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날의 내 기분을 이해해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통해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도.

그런데 써놓고 보니 '하루키'가 가장 많이 나온 단어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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