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금요일 오전 11시 즈음,
병원에서 할머니가 눈을 감으셨다.
가족에게 연락을 받고
가려던 수업을 때려치우고
터미널로 가 표 한 장을 샀다.
나도 이젠 철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월요일 병원 면회에서,
머잖아 떠나심을 직감했기 때문일까
갑자기-라는 당황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좀 남았으니 무엇을 할까,
차를 타기 전에 미용실로 가 머리를 정리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때 즈음 버스를 탔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만석에 히터까지 빵빵, 대구에 도착하고 보니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마음을 모르겠다.
슬픈가? 슬프다. 그러나 이십 년을 한 집에서 산,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상당수 차지한 사람이 떠났음을 생각하면 그 슬픔이 다소 부족한 것 같았다.
아마, 이것을 두고 양가감정이라고 하나보다.
그야 추억만을 말하기에는-
복잡한 마음을 풀고자 적으려던 글을.
차마 적는 것을 망설여 애써 지우고 만다.
나도 참 베베꼬인 놈이구나.
.
다시 (그러니까 "또")
신춘문예 이야기를 해볼까,
3년을- 이제는 4년이 되어가는 글을
나는 쓰고자 했다. 아니 써왔다. 그건 폭력으로 점철된 글이었다. 아마 내 생에 가장 역겨운 글이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사랑이 아닌 것으로 아기를 배고 만 여자의 이야기,
나는 그런 비참한 글을 쓰며 그 자리에서 울기도 했고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구토도 했다.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했다.
그러나 나는 차마 거기까지 쓰지 못했다.
자식을 사랑하는 여자를 말하는 것에 실패했다.
2021년 겨울. 좁고 시린 방에서 첫 생명을 품은 그 글은 2024년이 끝나가는 와중에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천천히 썩어갔다. 내 마음속 한편 어딘가에서 꿉꿉한 냄새를 풍기며 시꺼멓게 부패해 갔다.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사산아는
젓갈이 된 것 마냥 푹 삭혔다.
그걸 그대로 방치한 채 살았다. 지난 몇 년을. 시체 썩는 악취가 심장을 가득 채우도록-, 새어 나오도록.
人生の悲劇の第一幕は、親子となったことに始まっている。인생 비극의 제1막은, 부모와 자식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
나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거니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그를.
그가 내게 어떤 존재건 간에 나는 용서하지 않고자 했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이 결심이 약해지지 않기를 원하고 또 바랐다.
*
<절연>
나의 첫 신춘문예.
지난 몇 년을 붙잡고도 쓰지 못한 글을 제치고 써 내린 원고지 75매짜리 단편소설의 제목이다.
그건 꼭두새벽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 술 취한 중년 여성을 보고 쓴 글이다. 아르바이트생이 제 아들과 동갑이라는 말에 그녀는 제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울었다. 자기 아들은 군인이라고. 지금 대전에 있다고. 너무 보고 싶다고.
그녀는 내 손에 피로회복제 하나를 쥐여주고 떠났다. 잘 마셨다. 그리고 대충 눈치도 챘다. 내가 군필자라 그런가, 그녀의 아들은 대전 현충원에 있는 모양이었다.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음- 글쎄.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는데
내가 잘못 봤을 것 같은가?
퇴근하자마자 글을 썼다.
써야 하는 글이었다.
쓰고 싶은 글이었다.
써내야만이,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는 글이었다.
끊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끊어내지 못하는 불쌍한 여자를 보며 내가 씨- 몇 번을 망설였는지 이젠 기억도 안 난다. 그런 감정을 풀어쓴 글이다.
그러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이 놈은.
..내가 신춘문예를 쓰며 깨달은 게 뭔지 아는가?
내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못돼 처먹은 놈이었다는 것이다. 잊고 살았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나는 실로 변변찮은 놈이었다.
상처가 너무 아팠기에 상처받기 싫었고 그렇기에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 의심은 삽시간에 두려움으로 변해 나를 에워쌌고 나는 다만 벌벌 떨었다. 우를 범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그놈의 <인간실격>을 내던지겠다더니.
다자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겠다더니.
에라 씨-.
퍽이나 그러겠다.
*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펑펑 울었다. 거짓 없는 슬픔으로 엉엉 울었다. 그 슬픔에서 젖은 옷감같이 뚝뚝- 죄책감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사람이 죽으면 소름 끼치도록 차가워진다.
푸석한 머리와 여윈 팔, 얄쌍한 다리와 굳은 발. 손으로 어루만지는데 주마등이 스치는 것처럼 온갖 빛바랜 기억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가족이
모두 울었다.
가까스로 울음을 참았다.
*
상처받기를 꺼려 상처 주지 않고자 했다. 이것만은 진심이다. 거짓은 일절 없다. 그러나 나 또한 상처를 주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아니지. 모른다는 표현은 비겁하다. 난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자비를 구하는 것처럼
신부 앞에서 제 잘잘못을 고백하듯
고해-그러나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라도 하는 것 마냥
놓아버렸다. 원망 어린 설움을 그 한을 집념을- 그 밖의 모든 것들을 타르처럼 시꺼멓고 끈적한 미움을.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의 마음과는 별개로 적어도 나 한 사람은 이리 결심했다.
용서
하겠다, 고.
나 또한 상처를 주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말 테니. 내게 상처받은 사람들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고자 내게 상처 준 그 모든 사람들을 용서한다. 하고자 한다.
내 옆에 이 한 사람을
내게 가장 큰 아픔을 선사한
그를.
그리고 마땅히 사죄한다. 내가 상처 준 그 모든 사람들과 또 내가 살아가며 상처 줄 모든 사람들에게.
고아가 된 아들의 울음소리와
제 아들의 눈물을 닦지 못하는 어머니
피는 진하다
진해서 문제다
난제다 나는 풀 수 없다
*
*
타지에서 대학을 다녀 면회올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내가 가장 늦었다. 그래서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의식이 많이 없었다.
할머니는 손주를 보고 눈 몇 번을 깜빡이며 옹알이하듯 무어라 주억거리다 깊은 잠에 빠졌다.
이십 년 전에 내가 그랬을 것처럼.
그녀의 품에 안겨서. 해맑은 미소로. 까르르르-.
그땐 모두가 행복했을까.
나는 그랬다고 생각한다.
아니라면 그랬다고 상상한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모두 만났다는 것을 깨달아서일까, 그때까지만이라도 어떻게 필사적으로 버틴 걸까. 혹은 어떤 절대자가 가엾은 노인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일말의 유예를, 자비를 베푼 걸 지도 모른다.
막내 손자를 보고는 이내 미련도 사라지셨나. 고작 나흘이었다. 나흘 만에 그녀는 먼 길을 떠났다. 부디 그 길 끝에 먼저 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허탈.
허망.
나의 증오는 결국 허상이었나-.
어머니라는 존재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 아들을 도왔다. 그녀는 등 돌린 손자의 손을 잡는 데 성공했다.
절연은 그냥 담배 끊을 때나 쓰는 말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