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덕분에 책탐
자그마한 우리 집엔 사람도 책도 많이 산다.
주거공간 속 사람 자리를 기꺼이 책에게도 내어주기까지 19년이 걸렸다.
잦은 이사로 모든 집안 물품이 짐스러워 책도 가뿐하게 들이고 싶었다. 그런데 신랑은 책을 탐한다. 월급 받으면 책부터 샀다. 그는 각 분야의 책을 사서 성실하게 꼼꼼히 매일 읽는다. 만년필로 필사와 글쓰기를 겸하는 책 읽기를 하는 그가 신기했다. 신혼 때부터 그는 그랬고, 나는 눈치를 주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산 책들을 자동차 트렁크에 두고, 차 안에서만 보곤 했다. 집에 가지고 올 수 없어서다.
내 허락하에 저번달부터는 트렁크 안 책들도 데리고 올라와 함께 살게 되었다.
우리 집이 작은 도서관이 되었고, 신랑은 도서관장이다.
"박서방, 와인 관련 책 추천 좀 해주게. 알고 마시고 싶어서. 내가 잘 보고 다음에 갖다 줄게."
"아빠, 과학책 좀 추천해 주세요. 내가 볼만한 거로요. 독후감 수행이에요."
"여보, 나 글쓰기 독학 중인데 글쓰기 관련 책 좀 추천해 줘."
각종 책들이 구석구석 관심을 받고, 손을 타기 시작했다.
책을 편식하며 읽던 나도 발견하게 되었다. 도통 안 읽게 되는 분야의 책인데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생겼다. 과학 관련 서적이 그렇다. 작년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부터 과학에 흥미를 느껴 김상욱, 최재천 과학자 책들을 읽었다. 어려웠지만 조금 알게 되니, 자꾸 더 알고 싶어졌다. 이공계 전공자 지인분의 책소개, 추천 덕에 과학책들을 덥석 들게 되었다. 시작이 용감해져서 다행이다.
요즘에는 둘째 딸이 코스모스, 진화 책을 읽고 나에게 "엄마도 읽어봐. 그렇게 어렵지 않아. 나름 재미있어"라는데 엄마는 어렵다.
마음이 급해졌다. 나만 읽고 소화가 되면, 가족들과 대화의 폭이 훨씬 넓어질 텐데 말이다.
도서관장님께 더 쉬운 과학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안방 책장에서 '김상욱의 과학공부'를 꺼내 주었다. 인문학적, 과학적 내용이 적당히 섞여 쓰인 책이라 어렵지 않게 읽힐 거라고 했다.
엄마, 부인, 딸의 자리에서 가족의 삶을 현미경 보듯 하니 빡빡하니 갑갑하다.
책 생각, 책 이야기를 하면 좀 낫다.
안 읽는 사람으로 사느니, 읽어야 살맛이 나니 어쩔 수 없다. 읽는 수밖에.
짐 같은 책을 끼고 살아주는 게 아니라, 책이 내게 숨 쉴 틈을 주고 있음을 이제야 알았다.
고맙다. 다 네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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