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폐배터리 시장이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7~2019년 보급된 1세대 전기차들이 배터리 교체 시기에 접어들면서, 올해부터 사용 후 배터리 물량이 본격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폐배터리는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리튬·니켈·코발트 같은 핵심 광물을 회수할 수 있는 ‘도시 광산’으로 평가된다. 시장조사업체들은 2030년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67조 원 규모로 성장하고, 2040년에는 307조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30년 폐배터리 338GWh 발생, 67조 시장 형성
SNE리서치에 따르면 2030년 전 세계 전기차 폐차 대수는 411만 대에 달하고, 수명이 다한 배터리 용량은 338GWh 규모로 추정된다. 전기차 배터리 평균 교체 주기가 7~10년인 점을 감안하면, 2017년 이후 본격적으로 판매된 전기차들이 2025년부터 교체 수요를 끌어올리는 셈이다.
물량 증가와 함께 산업 성장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2025년 3조 원 수준에서 출발해 연평균 17% 성장하며 2040년 307조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공급망 안정과 자원 확보가 주요 과제로 부상하면서, 폐배터리를 둘러싼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블랙매스에서 리튬·니켈·코발트 추출
폐배터리 재활용의 핵심은 ‘블랙매스(black mass)’로 불리는 물질이다. 폐배터리를 수거한 뒤 방전시키고 파쇄하면 검은 가루 형태의 블랙매스가 생성되는데, 여기에 리튬·니켈·코발트 등 고가 금속이 고농도로 응축돼 있다.
블랙매스를 정제하면 다시 배터리 소재로 활용할 수 있어, 원료 확보 측면에서 전략적 가치가 높다. 원광 채굴 대비 비용은 30~50% 저렴하고 탄소 배출량도 최대 70% 이상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성과 친환경성, 공급망 리스크 완화까지 동시에 충족하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현대차·배터리 3사, 순환경제 구축 경쟁
국내 기업들도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글로비스가 폐배터리를 회수하고 현대모비스가 재제조를 담당하는 구조를 구축하며, 그룹 차원의 ‘순환경제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 역시 글로벌 거점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중국·유럽을 중심으로 재활용 거점을 마련했으며, 2026년까지 글로벌 전 생산사업장에서 재활용률 95%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단순 재활용을 넘어 폐배터리 회수부터 자원화까지 전 과정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SK온·삼성SDI도 재활용 네트워크 확대
SK온은 성일하이텍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2025년 상업공장 가동을 목표로 재활용 밸류체인을 확대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 기업이 재활용 체계를 직접 구축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삼성SDI는 성일하이텍 지분 8.71%를 보유하며 협력 관계를 강화했다. 천안·울산 공장에서 발생하는 스크랩을 재가공하는 체계를 운영 중이며, 지난해 발생한 17만5000톤 폐기물 가운데 약 16만5000톤을 재활용해 94% 수준의 재활용률을 기록했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크랩 자원화부터 관리 체계를 촘촘히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EU 규제 강화, 2031년부터 재활용 의무화
글로벌 환경 규제 강화는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을 키우는 핵심 동력으로 꼽힌다. EU는 2027년부터 2kWh 이상 배터리에 ‘배터리 여권’ 제도를 도입해 공급망, 원재료 사용, 탄소배출 정보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선 재활용 체계 구축이 사실상 필수 조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규제 강도는 더 높아진다. EU는 2031년부터 리튬 6%, 니켈 6%, 코발트 16% 등 재활용 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며, 재활용이 단순 친환경 전략을 넘어 수출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수익성 확보는 과제로 남아 있다. 리튬 등 핵심 금속 가격 하락과 전기차 수요 둔화로 재활용 기업들의 실적 부담이 커졌고, 업계에서는 향후 물량 증가와 기술력 확보 여부가 시장 안정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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