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길, 나의 길

위대함을 향해 걷는 걸음

by 온길

요즘의 나는,

어떤 문장은 내가 준비되어 있을 때보다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더 단단하게 박힌다는 걸 자주 경험한다.


어제 다시 읽은 니체의 문장도 그랬다.


그대는 위대함을 향해 그대의 길을 가고 있다.
그대의 발 자체가 그대 뒤쪽의 길을 지우면서 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대가 걸어간 길 위에는 ‘불가능’이라는 문자가 걸려 있는 것이다.

—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불가능을 이뤄낸 거인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숱한 시련과 고독을 견디며

세상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낸 사람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이 문장은 누군가의 특별한 업적이 아니라
위대함을 향해 걷는 걸음의 속성으로 다가왔다.

누군가가 걸어놓은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길을 걸어가는 시간.

걸으면 지워지고,

지워지면 다시 만들어가는,

그 반복 속에서 비로소 나의 길이 생겨나는 여정.


그 문장은 어느새 나에게로 걸어왔다.






2025년,

나는 남들이 고개를 갸웃하던 험지를 선택했고,
그곳에서 스스로를 성장시키겠다며

조용히 걸음을 내디뎠다.


사람들은 나의 선택을 의아해했고,
왜 굳이 그 길을 가느냐고 물었으며,

조만간 발길을 돌릴 거라며

내 결심을 가볍게 여겼다.


하지만 험지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자
예상치 못한 인정도 따라왔다.


그 과정이 전혀 쉬웠던 것은 아니다.


문제 해결의 매 순간,

처음 품었던 내 마음에 충실한 선택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리더로서 경계를 세워야 했던 날들,

몸도 마음도 상처를 입었던 순간들.

그 흔적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서

은근히 아려온다.


‘너무 애쓴 건 아닐까?’
‘굳이 안 가도 되는 길까지 간 건 아닐까?’
한동안은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반복하며
걸음을 아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험지를 택한 것으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


리더십을 다시 바라보는 깊이,
일을 읽어내고 추진하는 감각,
사람과 관계를 대하는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어도 되겠다’는 조용한 확신.


문제 상황을 대할 때마다

나는 이 일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인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해결하고 싶은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나라는 사람을 더 다층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을 묵묵히 이어온 지금,

비로소 ‘나를 믿어도 되겠다’는

조용한 확신이 찾아왔다.


타인의 시선을 뒤로하고

내 걸음에 집중하느라 애쓴 시간들.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오늘의 나를 단단히 지탱해준 힘이었다.


그리고 어제 니체의 문장이 다시 나를 붙잡았다.
‘그대의 길’.
즉, 나의 길.


나는 니체가 말한 ‘위대함’을
누군가의 눈에 대단해 보이는 성과가 아니라,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길을 끝까지 살아내려는 조용한 태도로 이해하게 되었다.




니체를 연구한 학자들의 해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터 카우프만은
위대함을 “자기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창조하려는 인간의 의지”라고 설명했고,

알렉산더 네하마스는
위대함을 “타인이 만든 길이 아니라
자기 해석에 따라 삶을 다시 써 내려가는 행위”라고 보았다.


하이데거 역시 니체의 인간상을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변형시키며
그 안에서 자기 존재의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존재로 해석한다.



결국 니체의 ‘위대함’은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떤 태도로 걸었는가에 대한 사유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내가 믿는 방향을 붙잡고,
그 길이 한동안 아무에게도 이해되지 않더라도
내 발로 그 길을 다시 써 내려가는 것.


어쩌면 나는 지난 9개월 동안
그 문장이 말하는 위대함의 한 조각을
몸으로 먼저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시선보다

내 안의 동기로 험지를 택했고,
어떤 날은 상처로 쓰러졌고,
어떤 날은 혼자 버티며 기준을 세웠으며,
어떤 날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나 자신을 향한 믿음으로 다시 일어섰다.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은
타인에게는 아마
‘이해되지 않는 길’,
혹은 ‘불가능해 보이는 길’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나는 마침내 내가 믿는 방향을 발견했다.


니체가 말하듯,

그 불가능이라는 표시는

내가 잘못된 길을 걸었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나만의 길을 걸어왔다는 증거였다.


책으로부터,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오늘도 나는
내가 믿는 방향을 향해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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