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는가

내 인생의 사계절

by 온길

가을 산행을 마친 뒤,
불과 일주일 사이에 계절이 완전히 바뀌었다.
첫눈이 내렸고,
긴 코트와 패딩이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가을이 그렇게 물러났다.


겨울이다.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아는가』에는
‘배나무의 사계절’ 이야기가 나온다.


한 스승이 네 명의 제자들에게
성급한 판단을 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배나무를 각기 다른 계절에 보고 오게 한다.
돌아온 제자들의 답은 당연히 제각각이다.
각자가 본 것은 배나무의 한 계절뿐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의 끝에 류시화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배나무를 보기 위해 떠난 제자들처럼
우리는 모든 계절을 품고 한 계절씩 여행하는 순례자들이다.
우리 자신이 한 그루의 나무이다.


나무는 계절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겨울이면 움츠러들고,
봄이면 조심스럽게 싹을 틔우고,
여름이면 흔들리면서도 자라며,
가을이 되어 비로소 자신이 준비한 결실을 드러낸다.


그 어떤 계절도 혼자만으로 나무를 설명할 순 없다.
모든 계절이 지나야 비로소 한 그루의 나무가 완성된다.





나는 지금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을까.



최근 몇 년을 돌아보면
아마 나는 꽤 긴 겨울을 지나온 것 같다.
겉으로는 잘 살아내고 있는 듯 보였지만
안쪽에서는 조용히 뿌리를 다지고,
말하지 않은 고민들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스스로 형태를 새로 만들어가던 시기.

그러는 동안
내가 미처 알지 못한 내 안의 단단함도 조금씩 만들어졌다.


봄도 이미 지나온 듯하다.
아리송하고 설레고 뜨거움이 아주 조심스레 올라오던 때.
‘어쩌면 될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가 움트고,
내 안에 작은 기운이 차오르던 계절.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아마 여름 언저리를 건너는 사람에 가까울 듯 하다.

여름은 언제나 뜨겁고 벅차다.
성장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가끔은 빛이 너무 강해
나의 그림자까지 선명하게 드러나는 날도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여름의 시간 덕분에
가을의 결실이 익어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 여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힘든 만큼, 가을을 향한 믿음도 커지는 계절.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안의 무언가가 이미 자라고 있는 시간.


그래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으려고 한다.
여름은 원래 뜨겁고,
가끔은 벅차지만,
꾸준한 제 속도로 자라나는 황금기니까.




누구나 모든 계절을 품고
한 계절씩 통과해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나를, 그리고 타인을
조금 더 뭉근하고 넓은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나의 계절이 겨울이라고
타인이 품고 있는 가을을 탐낼 필요도 없고,
나의 계절이 봄이라고
타인의 겨울을 함부로 판단할 필요도 없다.


그저 모두의 계절이
저마다의 속도로, 약속대로 흐르고 있음을 믿는 것.
그리고 그 흐름 안에서

오늘의 계절을

여행하듯 살아가려는 마음.


나는 이 마음을

내내 꺼내어 보게 될 것 같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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