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순 앞에서
『남에게 좋은 사람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을 읽다
이 문장 앞에서 잠시 멈췄다.
삶은 원래 모순적인 거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좋아지다가도 싫어지는 것,
나를 믿다가도 의심하게 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예전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쉬이 흔들리는 마음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내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서,
갈 바를 명확히 정하지 못해서
그래서 이렇게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일정 부분 맞는 통찰이지만,
지금 돌아보니
출발선이 조금 달랐다.
책에서 만난 이 문장은
흔들리는 마음을
굳이 바로잡지 않아도 된다고,
삶은 애초에
한 방향으로만 흐르도록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지난 여름날,
꾹꾹 눌러 읽었던
양귀자의 『모순』을 다시 펼쳤다.
이모부 같은 사람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이모의 낭만성을 나무라는 것이 내게는 훨씬 쉽다.
그러나 내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낭만성에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이란 존재의 한없는 모순…
사랑하게 만든 이유가
시간이 지나
미움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그럼에도 그 모순을 품은 채
다시 사랑하게 되는 마음.
『모순』은
겹겹이 존재하는 감정을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그런 마음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나 또한
책을 통해,
그리고 인생을 통해
삶의 본질이 모순적임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
내가 자주 붙잡는 말은
‘알아차림’이다.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차리는 것.
삶의 모순을 없애보려는 욕망,
그리고 피할 수 없다면
애써 이해해보려는 마음.
그 모든 시도가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
그러한 앎의 자리에서는
삶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작은 여유가 생긴다.
지금의 흔들림도,
지금의 의심도
그저 내 삶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앎.
니체는 이것을 ‘아모르 파티’라고 불렀다.
내게 주어진 삶을,
그 우연성과 모순까지 포함해
기꺼이 사랑하겠다는 태도.
필연적인 인생의 모순 앞에서
도망치거나 애쓰지 않고,
그저 담담히 알아차리는 것.
그 앎에 따라
오늘을 대하는 태도를
나답게 선택하는 일.
생의 순간마다
결국,
내가 향하고자 하는
삶의 본질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