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언어
교탁 오른쪽 상단에
나는 한 문장을 적어두었다.
The power of not yet.
학생들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가르쳐준 뒤에는
이 문구를 떠올리며
의도적으로 기다리는 쪽을 선택한다.
교사의 평정심을 지켜주는 힘의 팔할은
사실, 기다림이다.
왜 이렇게 안 달라지지?
또 같은 일로
혼내야 하는 상황이잖아.
수차례 말로 충분히 안내했는데도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면
마음이 먼저 흔들린다.
공포와 두려움이 있어야
질서가 잡히는 걸까?
거리두기와 통제가
정답일까?
‘믿고 기다려주는 방식’으로는
정말 변화하지 않는 걸까.
의심이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교탁 위의 문장을 본다.
아이들을 다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성급해지지 않도록
붙잡기 위해서.
어느 날,
아이들과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변화는
어느 날 한 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야.
조금씩, 아주 천천히
쌓여가는 과정에 가까워.”
그리고 아이들에게
포스트잇을 한 장씩 나눠주었다.
지금의 나에서,
앞으로 성장하고 싶은 것 한 가지.
말이 끝나자
교실은 조용해졌고,
아이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가진 채
포스트잇을 채워나갔다.
누군가는
‘책임감’이라고 적었고,
누군가는
‘발표할 때의 용기’를,
또 누군가는
‘친구에게 화내지 않기’를 적었다.
완성된 포스트잇을
하나씩 칠판에 붙였다.
스물네 장의 작은 종이가
차곡차곡 자리를 채웠다.
그 위에
나는 큰 글씨로 적었다.
Change is a progress, not an event!
아이들은
자기 글씨가 붙은 칠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변화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미 시작되고 있다.
아직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았을 뿐.
그래서 평정심을 지키는 교사의 언어는
재촉하는 말이 아니라
아이의 속도를 알아차리는 말에
가깝다.
‘왜 아직도 못 하는 거야?’가 아니라
‘아직인 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힘.
The power of not yet.
'아직'임을 아는 힘은
아이를 앞당기는 말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묵묵히 믿어주는 말을 낳는다.
이것이
기다림의 언어,
교사의 언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