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 대신, 다시 키를 잡는 마음
나는 요즘 썩 성실하지 못하다.
늦게 자고,
바지런히 일을 해내지 않고,
휴대폰을 붙들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오늘은 쉬자’라는 말을 너무 쉽게 꺼내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축 늘어져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한 문장이 자꾸 마음에 맴돈다.
배가 지나간 흔적이 배를 이끌지 않는다.
배가 지나가며 물 위에 남은 길은
잠시 흔적처럼 보이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진다.
지나간 흔적은 뒤에 잠시 남을 뿐,
앞으로 가는 방향은
지금 내가 붙잡은 키와 노가 정한다는 뜻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인데,
요즘의 나에게는 유난히 크게 들린다.
축 늘어진 나는, 자꾸 과거를 들춰본다.
잘 해냈던 날들을 떠올리며 ‘그때의 나’에게 기대거나,
실수했던 장면을 복기하며
‘그래,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지’ 하고
스스로를 작게 줄여 앉힌다.
하지만 잘했던 날도, 망쳐버린 날도
지금의 나를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어제의 성실함이 오늘의 나태를 덮어주지 못하고,
어제의 나태함이 오늘의 결심을 막아설 수도 없다.
이 문장은 웨인 다이어의 《의도의 힘》을 읽으며 오래 남았던 생각과 닮아 있다.
그는 삶을 바꾸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의도’라고 말한다.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마음으로 선택하느냐가
곧 우리의 현실이 된다고.
책을 읽을 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막상 흐트러진 일상 속에서는
그 문장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 다시 꺼내 본다.
어제의 성실함이 오늘을 대신해 주지 못하고,
어제의 나태함이 오늘을 영원히 망치지도 못한다면
내게 남은 것은 결국 지금의 선택뿐일 테니까.
그러니 어쩌면 나는 아직 괜찮다.
요즘 조금 흐트러져 있다 해도,
그것이 내 인생 전체의 방향은 아닐 테니까.
오늘은 설 연휴 한가운데다.
핑계는 충분하다.
조금 더 자도 되고,
하루쯤 건너뛰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자정까지 두 시간 반이 남았다는 사실을 붙들고,
‘오늘만 써 보자’고 마음을 고쳐 앉는다.
대단한 다짐은 아니다.
내일부터 새 사람이 되겠다는 선언도 아니다.
다만 오늘, 한 편을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배가 지나간 흔적이 배를 이끌지 않듯이,
어제의 내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손끝이
내 삶을 이끌어 갈 테니까.
완벽하게 사는 대신,
흔들리지만, 그래도 다시 키를 잡는 사람으로.
나는 오늘도 그 연습을 한다.
거창하지 않게,
그러나 끈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 여기에서
자기 삶의 키를 다시 잡아보기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