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불안 세대'였다.
조나단 하이트의 《불안 세대》.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질문이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환경을 내어주고 있는가.”
독서모임에서 그 책을 이야기하던 구제원 선생님의 얼굴을 나는 기억한다.
통계를 설명하는 목소리보다, 그 이후의 침묵이 더 길었다.
숫자는 이미 충분했다.
남은 것은 선택이었다.
책 속에서 읽은 문제의식은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질문은 현실의 과제가 되었다.
책《스마트폰이 사라진 교실》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교사 공동체와의 논의,
학부모 공청회를 통한 공감대 형성,
전교생 대상 스마트폰 사용 교육,
전교학생회의 결정, 그리고 학칙 개정까지.
한 사람의 문제의식은 혼자 남지 않았다.
1,000여 명의 학생·학부모·교사가 함께 고민했고, 함께 결정했고, 함께 감당했다.
책은 그렇게 문화가 되었다.
나는 그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같은 학교 6학년 부장으로, 때로는 회의 자리에서, 때로는 교실 안에서.
처음에는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정말 가능할까.
갈등이 더 커지지는 않을까.
하지만 변화는 생각보다 조용하게 시작되었다.
스마트폰이 교실에서 분리되자, 아이들의 시간이 달라졌다.
갈등의 출발점이 줄어들었고, 수업의 밀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그때 깨달았다.
환경은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것.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 환경을 바꾸는 일이 더 근본적일 수 있다는 것.
책 1부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도 같은 맥락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는 학습 환경은 상위권 학생에게는 큰 변화를 만들지 않았지만,
성적 하위 구간 학생들에게는 의미 있는 향상을 가져왔다는 연구 결과.
이미 자기조절이 가능한 아이에게는 큰 차이가 없지만,
아직 배우는 중인 아이에게는 환경이 기회가 된다.
그 문장을 읽으며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교실에서 본 장면들이 겹쳐졌다.
이 책은 금지를 외치는 목소리가 아니다.
아이들을 통제하자는 선언도 아니다.
대신 묻는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울타리를 세워주고 있는가.
그리고 어른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책을 덮고 나면 거창한 결론이 생기지는 않는다.
대신 한 가지는 또렷해진다.
결국
아이들 곁에
어떤 울타리를 세울지는
어른의 몫이라는 것.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자꾸만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어떤 문제의식을 품고 있는가.
그 문제의식을 실행으로 옮겨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공감과 고개 끄덕임에서 멈춰선 적은 없었는가.
구제원 선생님에게서 내가 배운 것은 정책이 아니라 태도였다.
책 속 문장을 현실로 옮기는 행동력.
혼자 결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공동체와 끝까지 논의하는 끈기.
그리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책임감.
한 권의 책이 한 학교를 바꾸었다기보다,
한 사람이 책을 삶으로 번역해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 번역의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책은 늘 우리 곁에 조용히 놓여 있다.
읽는 순간보다,
그 이후의 선택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