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도 지겨울 때가 있는 법이다
교사라는 일을
나는 여전히 좋아하는 편에 속한다.
아이들과 마주 앉아
하나를 설명하고,
그 설명이 누군가의 표정 안에서
조금씩 이해로 바뀌는 순간을 보는 일은
지금도 내게 작지 않은 기쁨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늘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일이 지치고,
아무리 애써도 닿지 않는 마음 앞에서
내가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해 보다가도
문득 마음이 느슨해지고,
괜찮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가도
내 한계만 또렷이 보이는 날이 있다.
잘하고 싶을수록
더 조급해지고,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도
어느 순간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일이어서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이지만
지겨움과 무력감과 부족함을 통과하면서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거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에서
처음에는 이 문장에 마음이 머물며
한참을 읊조렸다.
'그러니 계속해야겠다.'
무려 반 고흐의 고백이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조금 머쓱해졌다.
고흐처럼 대단한 화가도
그렇게 수없이 흔들리며
자신의 일을 계속해 왔는데,
나는 과연 얼마나 애써 보았던가.
그러고 나니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이 문장이
뒤늦게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교사라는 일을 하면 할수록
고학년이든 저학년이든
결국은 한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살 어린이든,
13살 사춘기 청소년이든,
아이가 보이는 행동만이 아니라
그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읽어 내려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수록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더 나은 교육자가 된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나로 바꾸어
마음속에 담아둘 말을
적어본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현실에 낙담하는 일을 또다시 반복한다.
그래도 계속해서 해 보면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거다.
그러니 계속해서 교단에 서야겠다.
— 오늘밤, 교사의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