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전원소녀

우리 할머니

by 연탄엄마

내가 다섯 살 때 동네에 우물이 생겼다. 농수로를 손보는 김에 우물을 파고 시멘트를 바른 듯했다. 할머니와 엄마는 빨간 고무 대야에 빨랫감을 가득 담아서 우물가를 찾았다. 나는 엄마가 빨래할 때 따라가서 구경을 했다. 바닥에 빨래판을 깔고 비누가 잘 묻은 빨랫감에 달그락 달그락 방망이질을 하면 구정물이 비누 거품에 섞여 나왔다. 몹시 재밌어 보였지만 엄마는 옷 버린다며 방망이에 손도 못 대게 했다.

나는 작전을 바꿔 할머니가 빨래할 때를 노렸다. 할머니 옆에서 방망이로 열심히 빨래에 두드렸다. 내 옷은 빨랫감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흠뻑 젖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옷을 다 버렸다며 크게 화를 냈다. 그러고는 서랍에서 뜨개질 하는 대바늘을 꺼냈다. 나는 가는 회초리가 종아리를 칠까 봐 겁이 나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할머니가 나와 엄마 사이에 끼어들었다.

"에미야, 얘 혼내지 마라. 할미 돕겠다고 한 건데."

할머니는 엄마 손에서 전사의 무기를 빼앗아 부러뜨려 버렸다. 물론 할머니는 엄마를 아꼈다. 그보다 조금 더 나를 사랑했을 뿐이다.


한번은 아침에 자고 일어나 보니 조그만 참새가 마루에 묶여 있었다.

"와, 새다!"

할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셨다.

"다리가 부러졌더구나. 돌봐줘야 할 것 같아."

할머니는 작은 생명체를 사랑했다. 할머니가 내 손에 모이를 쥐어줬는데 조라고 했다. 손바닥을 펴서 노란 곡식을 참새 앞에 내려놓았다. 참새는 푸드덕대던 날개를 접고 먹이를 먹었다. 우리 집에는 개도 있고 닭도 있었지만 나는 참새에 푹 빠져서 매일 마루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마루에 참새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할머니!"

내 목소리는 다급했다.

"참새가 없어졌어요."

할머니는 인자하게 웃으셨다.

"할미가 보내줬지. 다리가 다 나았더구나."

할머니는 내가 보내지 말자고 떼 쓸 걸 알고 내가 없을 때 참새를 날려 보냈던 것이다.


얼마 뒤 할머니는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갔다. 의사는 대장암인데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진행이 됐다며 집에서 시간을 보내라고 했단다. 할머니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일어나, 할머니 돌아가셨어."

엄마가 아침에 나를 깨웠다. 할머니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돌아가셨다. 가족들이 알면 가지 못하게 붙잡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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