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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대신 반짝임을 택하는 시대

마음에 오래 담을 '깊은' 이야기를 쓰는 중입니다

"선생님, 오늘까지만 수업할래요."


한참 수업이 끝난 저녁, 아이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읽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날 한 학생이 발표를 대충 하고 넘어가려 하길래 "잘할 때까지 다시 해보자" 하고 몇 번 더 시켰을 뿐이었다. 그러자 결국 그 아이는 수업을 끊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단지 '더 잘하기 위해 다시 해보자'고 했을 뿐인데, 그게 이토록 큰 거부감으로 돌아오다니.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다. 7년째 아이들과 글쓰기, 논술 수업을 하면서 나는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봤다.


"선생님이 무서워요."

"너무 어려워서 못 하겠어요."

"저 힘들어서 그만둘래요."



진심이 부담으로


아이들이 이런 말을 꺼낼 때는 대체로 내가 더 진심을 다했을 때였다. 발표를 대충 하면 다시 시키고, 글을 성의 없이 쓰면 처음부터 다시 써오라고 하고, 부족한 점이 보이면 피하지 않고 짚어준다. 그런데 그런 '더 나아지게 하려는 마음'이 아이들에게는 종종 '부담'이나 '압박'으로만 느껴졌나 보다.


어떤 아이는 다른 학원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다른 학원은 파티도 해요."

"쿠폰 모으면 물건 살 수 있대요."


마치 '왜 여긴 그런 게 없느냐'는 식이다. 배움을 위해 오는 학원보다 재미를 위해 오는 학원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 번 정말 '진심인 영어 학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학생이 유난히 자기주도적으로 공부를 잘하고 있었는데, 그 비결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영어학원에서 선생님이랑 같이 의논하고, 칠판에 정리하고, 발표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배웠어요."


IE003508977_STD.jpg 진심인 수업. 선생님이랑 같이 의논하고, 정리하고, 발표하고 ... 하나부터 열까지 배웠어요.


그 학원은 단순히 단어를 외우게 하거나 문제집만 풀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영어로 표현하고, 그 과정을 제대로 단련하도록 도와주는 곳이었다. 나는 그 순간 '정말 진심인 학원이구나' 싶어졌다. 그래서 바로 물었다.


"그 영어 학원 어디야? 우리 아이도 보내고 싶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문 닫았어요."


그 짧은 한마디 속에서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원장도 나와 똑같이 고민하며 같은 어려움 속에서 버텼을 거라는 것을. 정말로 아이의 성장을 이끌던 학원이었지만,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날 나는 비로소 알았다. 진심인 학원일수록 운영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물론 진심을 다하면서도 많은 아이들에게 사랑 받는 학원도 분명 있다. 하지만 내가 본 경우, 아이들에게 조금 힘든 과정을 견디게 하며 성장 시키는 곳일수록 단기적인 인기에는 불리했다. 쉬운 공부, 당장 재미있는 수업, 눈에 띄는 이벤트는 아이들을 금세 모으지만, 그게 전부인 곳은 결국 깊이를 잃는다. 반대로 조금 힘든 과정을 견디게 하며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는 곳은 장기적으로 더 큰 힘을 주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경우가 많았다.


재미와 화려함이 단숨에 시선을 모으는 건 교육 현장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풍경은 일부 출판계에서도 보였다.


"재미있는 동화에 퀄리티 높은 그림을 많이 넣어서 요즘 아이들의 인기를 얻고 있어요."

"다이나믹한 사건이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필요해요."

"너무 교훈적이에요. 아이들에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너무 앞서면 안 됩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선택 받으려면 화려한 소재, 웃긴 장면, 반짝이는 설정이 앞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불편해 하면 책을 덮을까봐 '~해라' 같은 노골적인 메시지는 절대 금지다. 대신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과 장면을 강조한다.


이쯤 되면 유튜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회수를 위해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 사진을 뽑고, 잠깐의 웃음을 위해 본질을 희생하는 영상들처럼, 책도 '첫 장의 유혹'과 '마지막 장까지의 달콤함'을 쫓는다. 부모들 또한 아이가 책을 즐겁게 읽으면 '좋은 책이구나' 하고 안심하지만 그 책이 아이 마음속에 무엇을 남기는지는 묻지 않는다.


학원에서 아이들의 눈길을 끄는 이벤트와 편리함이 진심을 가리고, 출판계에서는 화려한 사건과 캐릭터, 교훈 없는 재미만 좇는 현실. 두 세계 모두 깊은 성장을 위한 진심이 사라져 가는 듯해 답답하다.



성장을 위한 진심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출판사들이 있다. 아이들의 눈길을 끌 재미와 주도적 성장이 핵심이라는 거다. 사실 나도 그 생각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이가 읽는 동화에서 주인공이 스스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며 성장하는 과정은 분명 큰 힘이 있다. 나 역시 그게 동화의 본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그렇게만 흘러가야 할까? 때로는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현실 속 아이들처럼, 동화 속 아이들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주변 어른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어른을 통해 '진짜 어른'을 만나 배우는 아이들도 많다. 이야기 속에서도 그리고 현실 속에서도 때로는 그런 장면이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든든한 어른의 존재는 아이들에게 희망과 안정을 주고 어른 역시 그 과정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다.


IE003508978_STD.jpg 글쓰기로 이어지는 진심. 나는 아동문학이 '단순히 즐겁게 하는 것'보다 미음 깊이 오래 남는 '깊은 이야기'여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아동문학이 아이들을 '단순히 즐겁게 하는 것'보다 마음 깊이 오래 남는 '깊은 이야기'여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마음속 불편함과 갈등을 마주하고 함께 고민하며 해결 방법을 찾아 나갈 수 있는 그런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더 오래 남아 현실에서도 삶을 헤쳐 나갈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학원에서 아이 비위만 맞추다 공부의 본질을 잃는 것처럼, 출판계도 아이 눈길만 좇다 보면 아동문학의 본질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아동문학이 단지 '아이에게 선택받기 위한 상품'이 될지, 아니면 '아이를 사람으로 키우는 도구'가 될지는 결국 작가와 출판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나는 아이들이 단지 웃고 넘기는 독자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독자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원고 앞에 앉는다. 재미는 기본이지만, 그 속에 반드시 '진심'을 숨겨 놓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그리고 내 진심을 알아줄 출판사도 언젠가 만나게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흔들리지 않고 써 나가려 한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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