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가 아니면 못 만드는 추억이라서
우리 집은 시내 한복판에 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병원, 도서관, 카페, 마트가 다 있고, 버스만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굳이 자동차가 없어도 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몇 년 전 형편이 어려워 차를 정리했을 때도 "괜찮아, 없어도 돼" 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게다가 남편은 트럭을 몰았다. 출퇴근이나 생필품을 옮길 때는 그 차를 이용하면 됐다. 나는 늘 그 차에 얹혀 다니는 신세였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자동차 하나 사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형편도 넉넉지 않은데 차는 무슨 차야. 없어도 살잖아."
그러자 남편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여보, 우리 아이들이랑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그래. 지금 아니면 못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불편함 때문에 차를 떠올렸지만,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주도에 살 때는 차 두 대를 가지고 살았다. 남편 차 한 대, 내 차 한 대. 제주에서는 차가 없으면 생활이 불편해 사실상 필수품이었다. 특히 나는 드라이브하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차를 타고 섬 구석구석을 다녔다.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고, 숲길을 걸어 오름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예쁜 카페에 들러 아이들과 케이크를 나눠 먹고, 미술관과 도서관에서는 전시를 구경하고 책을 읽었다. 승마장에서는 말을 타려다 무서워 "다음에 타자"며 돌아오기도 했고, 카트장에서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바람을 가르며 멀리 퍼져나갔다.
아이들은 늘 즐거워했다. 바다에서 파도를 따라 달리고, 작은 전시관에서도 눈을 반짝였다. 여행은 우리 가족의 일상이었고, 아이들도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그때 아이들이 5살 때부터 9살 때까지 그랬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때의 즐거움이 지금은 거의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부모가 공들여 만든 추억이었지만, 아이들 마음속에서는 사진 속 장면처럼 희미하게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제주 시절의 여행이 사라지고, 육지에 와서는 차조차 없었다. 더 이상 가족 여행은 일상이 아니었다. 비어버린 자리를 스마트폰과 친구들이 채웠다. 아이들은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가족보다는 친구와의 약속을 우선시했다. 부모와의 대화는 줄어들고, 가족의 의미는 점점 약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큰아이는 중학교 1학년, 벌써 사춘기의 길목에 서 있다.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이제 곧 사춘기로 들어설 나이다. 바로 지금이, 아이들이 무언가를 또렷이 기억하고 추억으로 쌓을 수 있는 시기다. 지금 만들어주는 경험은 앞으로도 오래 남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아이들에게 남는 건 스마트폰 화면 속 장면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차를 사기로 했다. 단순히 편리함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선택한 차는 승합차인 카니발이었다. 가족이 다 같이 타고 다니기 충분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산 뒤 우리는 원칙을 세웠다.
"평일은 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 하지만 주말 만큼은 가족과 함께 보내자."
처음엔 아이들이 반발했다.
"싫어, 친구랑 약속했단 말이야."
"맨날 엄마, 아빠랑만 있으면 재미없어."
당연한 반응이었다. 스마트폰이 더 좋은 나이.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나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네 스마트폰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이 시간만큼은 엄마 아빠한테 비워줘."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서울 전쟁기념관, 국립나주박물관, 완도, 구례 화엄사, 그리고 가까운 순천의 문화의 거리까지. 멀리 갈 때도, 가까이 갈 때도 있었다. 중요한 건 거리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었다.
처음엔 아이가 억지로 따라왔다. 차 안에서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봤다. 하지만 몇 번을 반복하다보니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이가 먼저 물었다.
"오늘은 어디 가?"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아, 우리 가족이 다시 연결되고 있구나.'
지난 주말엔 전남 도립미술관에 다녀왔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낯설어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언제 끝나?'라는 표정이었다. 스마트폰만 붙들던 아이들에게 그림과 설치 작품은 너무 멀고 낯선 세계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했다. 그림 앞에 멈춰 서서 "이건 뭐야? 사람 얼굴 같아"라며 대화를 나누고, "아빠, 이건 내가 그려도 되겠다"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예전 제주 시절, 미술관과 도서관을 익숙하게 드나들던 기억이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스마트폰 너머의 세계에도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아이들이 다시 알아가는 것 같았다.
이제 나는 확신한다.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아이와 부모가 다시 이어질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이고, 가족의 추억을 담아내는 도구다. 우리가 산 카니발은 '움직이는 거실'이자, '추억 상자'다.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 품을 완전히 떠나더라도, 이 차 안에서 함께 보낸 시간 만큼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제주 시절의 여행이 아이들에게는 흐릿한 사진 한 장처럼 남았다면, 지금의 여행은 그들의 기억 속에 오래 각인될 것이다. 중학생, 초등학생 이 시기가 바로 추억을 새길 수 있는 최적의 나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동차를 산 게 아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남겨줄 추억을 산 것이다. 그리고 그 추억이야말로, 앞으로 우리 가족을 오래도록 묶어주는 끈이 되어줄 것이다.
▲전남도립미술관을 찾다일주일에 한 번,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전남도립미술관이다. ⓒ 이효진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