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마트폰 압수당한 중1 아이는 무엇을 할까?

스마트폰 없는 하루

by 작가의식탁 이효진

중1 사춘기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매일이 전쟁이다. 친구들과의 갈등, 사소한 다툼, 뜻하지 않은 사건과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전쟁은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순간부터 아이는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 버린다. 가족과의 대화는 줄고, 밥상머리에서도 눈은 오로지 화면을 향한다.


며칠 전, 결국 나는 결심했다.


"오늘 하루, 스마트폰은 압수야."


순간 아이의 표정이 굳었다. 분노와 허탈함이 교차했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았다. 하루쯤은 괜찮겠지, 잠깐이라도 세상과 거리를 두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런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방문을 닫고 늘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던 아이는 스마트폰이 사라지자, 뭐 할 게 없다는 듯 그저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하루 종일 잠만 잤다.


혹시 학교생활 속에서 스트레스가 많았던 걸까?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생긴 피로감이 누적된 걸까?

아니면 모든 걱정을 잊고 싶었던 걸까?

그저 잠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던 걸까?

시험이 끝나서 피곤했던 건 아닐까?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는 오로지 잠에 빠져 있었다.


둘째 아이 때도 같은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뺏고 책을 건네줬었다. 책을 읽으라고 했더니 몇 장 넘기지도 않고 금세 꾸벅꾸벅 졸더니, 결국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깨달았다. 책은 아이에게 '수면제'였고, 스마트폰을 빼앗는 일은 곧 '잠을 주는 일'이 되어버린다는 걸.


스마트폰을 뺏는다는 건 단순히 기기를 없애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에게서 자극을 없애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찾아온 건 커다란 공백, '심심함'이었다.


한편 그런 생각도 들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건 단순히 중독이나 습관의 문제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아이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끈이었고, 외로움과 불안을 달래주는 작은 피난처였는지도 모른다. 그 끈을 갑자기 놓아버리자 아이는 세상과 단절된 듯 그대로 잠 속으로 떨어져 버린 건 아닐까.


IE003539232_STD.jpg 스마트폰 없는 아이, 손끝으로 세상을 다시 만난 시간


이틀째가 되자 아이는 조금 달라졌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아이는 베란다 쪽을 기웃거리더니 공구함을 꺼냈다. 평소에도 자전거를 손보는 걸 즐겼지만, 그날은 더 진지하게 타이어를 점검하며 시간 가는 줄 몰라 했다.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고, 손끝엔 진지함이 묻어났다.


한참 후,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이제 뭐하지?"


아이는 집안을 둘러보다가 피아노 앞에 섰다. 건반 위에 손가락을 얹더니, 띵, 띵, 한 음씩 눌러본다. 엉성한 리듬, 어설픈 박자.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표정엔 미소가 번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스마트폰이 없으니까 아이가 손으로, 귀로, 몸으로 세상을 다시 만지고 있구나.'


그날 저녁, 아이는 내게 말했다.


"엄마, 피아노 치는 거 재밌다."


"잘 치는데."


그 대화는 아주 짧았지만, 그동안 잊고 지냈던 따뜻함이 스며 있었다.


처음엔 화가 났다. 친구들과의 다툼이 이어졌고 사소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 일로 아이가 다치거나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벌을 주려는 마음이 앞섰지만, 사실 그 밑바탕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아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그 시간은 벌이 아니라 기회였다. 아이는 스스로 시간을 채우는 법을 배워갔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리는 법을 배워갔다.


요즘 아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다. 학교, 학원, 스마트폰, 유튜브, 게임까지. 모든 게 너무 빠르고,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세상이다. 하지만 그 속도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만의 시간'을 잃어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누군가 대신 채워주지 않는 시간, 그 공백이야말로 아이를 성장시킨다.


나는 이번 일을 통해 깨달았다. 스마트폰을 뺏는 건 단순한 통제가 아니라, '심심함을 견딜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일이라는 걸. 그 힘이 자라야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새로운 재미를 찾고, 자기 안의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스마트폰을 뺏은 하루와 이틀, 그 시간은 아이에게 벌이 아니라 쉼표였다. 하루는 잠으로, 다음 날은 자전거와 피아노로 자기만의 시간을 채웠다. 아이는 스마트폰이 아닌 세상을 탐색했고, 나는 기다림의 가치를 배웠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keyword
이전 02화공부 포기하겠다는 중1 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