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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포기하겠다는 중1 아들에게

손끝에서 전하는 마음

by 작가의식탁 이효진

"엄마, 나 공부 포기할래. 공부 왜 해야 돼?"


중학교 1학년 아들이 또다시 내게 던진 말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래, 사춘기라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말은 부모 마음을 무너뜨린다. 대답을 해주고 싶어도 내가 하는 말은 전부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어떻게 해야 아이 마음을 건드릴 수 있을까. 속은 답답한데 입은 떨어지지 않는다.


아이는 스마트폰 세대다. 손에는 늘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클릭 몇 번이면 영화도, 게임도, 원하는 정보도 모두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필요한 것들이 손쉽게 주어지니, 공부는 어쩜 불필요한 노동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이에게, 굳이 어려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는 주변 어른의 삶을 보며 더욱 공부 포기를 결심하는 듯하다. 특히 가장 가까운 아빠의 모습을 통해서다.


"엄마, 아빠도 공부 못해도 그럭저럭 살잖아. 나도 뭐 공부 잘할 필요 없잖아."


그 순간 나는 허탈함과 놀라움이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사춘기 아이의 현실 감각이 이토록 무심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아이의 눈을 맞추고 설명하려 해도, 그는 이미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집에서는 대화보다 스마트폰이 중심이고, 밖에서 놀다 오면 다시 화면을 들여다본다. 소통의 방법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답답함을 느낀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디지털 세상 속에 태어난 아이에게, 단순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아날로그의 방법, 손편지를 떠올렸다. 손글씨로 내 마음을 전한다면 말로는 전달되지 않는 감정과 진심이 조금이라도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편지를 쓰며 나는 아들이 좋아하는 자전거를 떠올렸다. 인생에는 편한 자전거길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론 언덕길도 만나고, 갑자기 비 오는 날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바로 공부력이라는 이야기를 담았다.


편지를 쓰는 동안, 나는 내 마음도 조금씩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단순히 '공부해라'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법과 스스로 노력하며 나아가는 힘이었다.


IE003517912_STD.jpg 노트 한 권을 장만하고 첫 장에 편지글을 담았다. 직접 건네는 대신 그냥 아들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노트 한 권을 장만하고 첫 장에 편지글을 담았다. 직접 건네는 대신, 그냥 아들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특별히 "읽어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반응은 알 수 없지만, 기다림 속에서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차올랐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 자란 아이에게, 아날로그 손글씨가 전하는 따뜻한 마음이 닿을 수 있을까. 스마트폰이 모든 답을 주는 세상에서, 굳이 손편지를 쓰는 의미가 있을까.


문득 과거 남편이 이야기해주었던 조카가 떠올랐다. 당시 고3이던 조카도 "공부 포기할래. 굳이 잘할 이유 없어, 그냥 삼촌처럼 살래"라며 노력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놓아버린 현실 속에서 수많은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고, 결국 원하는 길로 나아가지 못했다. 남편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부모의 욕심이 과한 걸까. 아이에게 공부를 잘 해내길 바라지만, 동시에 평범한 삶도 괜찮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하지만 아직 중1, 배우고 경험할 시간이 충분하다. 지금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회를 잃지 않을 수 있다.


오늘 밤, 나는 그 답을 기다린다. 책상 위 노트를 발견한 아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일지, 아니면 그냥 지나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아날로그의 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미 있는 순간에 쓰일 때, 그 힘은 더 빛난다.


엄마로서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아이와의 소통,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연결하는 법. 오늘도 손끝으로 글을 쓰며 내 마음을 조금씩 아들에게 건네본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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