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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사진 찰칵

울긋불긋 가을에 취하다

by 작가의식탁 이효진

주말이면 아이들과 어디로 갈지 늘 고민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SNS에 단풍 사진이 유독 많이 보였다. 사실 내가 사는 순천은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가로수만 따라 걸어도 이미 아름다운 길이 펼쳐지는 도시니까. 특히 내가 자주 찾는 연향동 일대는 노란 은행나무 거리가 눈부셔 '일상이 곧 화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최근 유튜브 채널 '뜬뜬'에서 개그맨 지석진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가 장모님이랑 내장산 단풍 구경 간대요. 그런데 저는… 굳이 명소에서 봐야 하나? 우리 삶 안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데…"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어 홍진경씨가 말했다.


"아니, 가서 보면 확실히 더 좋긴 하더라고요."


유재석씨도 맞장구쳤다.


"명소 가서 보면 진짜 달라요."


마지막으로 조세호씨가 결정타를 날렸다.


"절경입니다. 정말 아름다워요."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 절경은 또 절경대로 보러 가야지. 올해 단풍 구경은 어디로 갈까?"


순천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을 찾다가 구례가 떠올랐다. 지난번엔 화엄사를 다녀왔으니 이번에는 연곡사로 방향을 정했다. 지난 16일, 연곡사에 들어서자마자 아이가 투덜거렸다.


"또 절이야? 왜 자꾸 절만 와?"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야, 절 보러 온 게 아니라 단풍 구경하러 온 거야. 똑같은 절이라도 계절마다 완전 다르잖아. 오늘은 단풍을 보러 온 거라고 생각해봐."



계절마다 다른 빛


IE003549477_STD.jpg 연곡사로 향하는 길


사실 그 말은 내 마음에도 다시 한번 떠올려지는 문장이었다. 똑같은 공간도 시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얼굴을 가진다. 우리 삶도, 관계도, 아이의 성장도 그러하듯 계절마다 다른 빛을 띠는 것이다.


연곡사의 단풍은 정말 절경이었다. 빨갛게, 주황색으로, 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산사 곳곳에 수놓아져 있었다. 누군가는 나뭇가지를 클로즈업해서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단풍 아래에서 커플 사진을 남기고, 어떤 이는 혼자 조용히 단풍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차 있었고, 단풍을 즐기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길은 북적였다. 모두가 울긋불긋 가을에 취해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오늘은 스마트폰 좀 그만 보자. 단풍 좀 보자."


그러자 아이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스마트해지려고 스마트폰 보는 거야."



IE003549487_STD.jpg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찼고 단풍을 즐기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오늘 만큼은 아이도 단풍을 사진으로 담았다. 나뭇잎 하나하나의 색을 들여다보고, 저 멀리 산 위까지 이어진 붉은 물결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바랐다. 아이 마음에도 울긋불긋 단풍 한 조각이 스며들었기를.


일상의 풍경이든, 명소의 절경이든,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은 우리가 잠시 멈춰 바라볼 때 찾아온다. 이번 연곡사 나들이도 그런 순간이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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