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동안

계약은 했지만 책은 언제 나올까

지난 9월 초, 마침내 동화책 출간 계약을 했다. 처음 원고를 완성해 출판사에 보낸 뒤 연락이 오기까지의 시간도 길었지만,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그 순간은 정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제 나도 출간 작가가 되는구나.'


하지만 정작 계약 이후의 시간은 그때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계약 후 한 달, 아무 연락이 없었다. 출판사에서 진행 중이라면 언젠가 소식이 오겠지 하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이게 과연 만들어지고는 있는 걸까? 계약은 했는데, 실제로 책이 나오는 걸까?'


그 사이 추석 연휴까지 지나가면서 시간은 더욱 길게 느껴졌다. 그 기다림은 설렘보다 조심스러운 불안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10월 15일 드디어 출판사에서 메일이 도착했다.


"작가님이 지금 동화책 진도가 어떻게 나가고 있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아 연락드립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기다림의 끝이 담겨 있었다. 메일에는 이어서 이렇게 적혀 있었다.


"현재는 그림 삽화가 어느 부분에 들어가야 할지 구상하고 있고, 대략 15컷 이상 진행될 예정입니다."


순간 마음이 놓였다. '드디어 책이 만들어지고 있구나.' 그동안 나 혼자만 초조했던 것이 아니라 출판사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씩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IE003535690_STD.jpg 책축제 현장에서: 출간 자체가 이미 나에게는 하나의 축제다


사실 글을 완성하면 곧 책이 나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한 권의 동화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글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글 작가가 이야기를 쓰면, 그 이야기는 그림 작가의 붓으로 옮겨지고, 편집자의 손에서 형태를 다듬고, 디자이너의 감각이 옷을 입힌다. 그렇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은 릴레이 경기처럼 서로에게 바통을 건네며 이어진다.


출판사에서 보낸 메일에는 "그림 샘플이 완성되는 대로 보내드리겠다"는 문장도 있었다. 그 한 줄이 주는 설렘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이제는 내가 그린 문장들이 누군가의 그림으로 살아 움직이게 된다. 그림을 직접 그리진 않지만, 내 머릿속에 있던 장면들이 누군가의 손끝에서 현실이 된다는 건 작가에게 큰 기쁨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원고를 완성하고, 심사를 기다리고, 계약 소식을 기다리고, 이제는 출간 과정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기다림의 시간도 결국 '창작의 일부'라는 걸 깨달았다. 책이 만들어지는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배움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작가의 글'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다. 그림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 교정자… 그들의 손길이 모여야 비로소 한 권의 책이 된다. 그 사실을 새삼 체감하니, 이제 출간을 기다리는 일도 마냥 초조하지 않다.


이제 나는 출판사로부터 그림 샘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림을 보는 순간, 내 글 속 인물들이 진짜 세상으로 걸어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 것 같다. 동화 속 주인공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내가 상상한 장면과 얼마나 닮았을까, 그런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책이 완성되기까지는 아직도 몇 단계가 남았다. 그림, 편집, 교정, 디자인, 인쇄…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과정이 마치 함께 달리는 동료들의 여정처럼 느껴진다. 글로 시작된 이야기가 그림으로 이어지고, 편집자의 손에서 완성되어 세상이라는 독자에게 전달되는 일.


아동문학 작가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지금 '기다림'을 배우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은 결국 '기다리는 일'이다. 문장이 완성되기를, 독자가 만나주기를, 그리고 책이 세상에 나와주기를.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성장하고 있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동안 나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내 인생의 새로운 한 챕터를 써 내려가고 있다.


기다림은 멈춤이 아니라, 또 다른 창작의 시간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keyword
이전 12화도전과 멈춤 사이, 인생이 나를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