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아홉, 다시 설렘을 느끼다

다시 반짝이는 나의 꿈

by 작가의식탁 이효진

지난 10월 31일,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메일에는 주인공들의 샘플 스케치 컷이 담겨 있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 잊고 있던 설렘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나이가 들수록 현실에 쫓기다 보니 이런 설렘이나 목표, 꿈 같은 건 내게 더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마음은 건조했고 '이제는 그냥 버티며 살아야지' 하고 여겼다.


쉼 없이 달려온 방송작가의 삶. 매일 아이템을 찾고, 원고를 쓰고, 마감에 쫓기며 살았다. 처음엔 모든 것이 꿈이었다. 라디오 작가가 되기 위해 수없이 원고를 보내고,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고, 방송국에 전화를 걸던 시절. 그때의 나는 매 순간이 설렘이었다.


방송작가로 첫발을 내딛었을 때의 그 떨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좋은 피디님, 마음이 잘 맞는 아나운서 언니와 함께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밤을 지새우던 시절. 그 시간들은 치열했지만, 반짝였다. 아이템 하나를 두고 토론하고, 원고 한 줄에 온 힘을 쏟아붓던 그 시절이 돌이켜보면 내 청춘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그 꿈도 점점 '일상'이 되어갔다. 반복되는 마감과 익숙한 리듬 속에서 이젠 더 이상 설렐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삶의 무게 중심은 가족에게로 옮겨졌다. 생계를 버티기 위한 과정 속에서 '나의 꿈'보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날들'이 더 중요해졌다. 가족의 삶, 현실의 무게, 내일의 걱정. 그 속에서 내 꿈은 조용히 가슴 깊숙이 묻혀버렸다.


방송작가 일을 그만둔 이후에도 그랬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일상 속에서 나는 '이제 이게 내 삶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것도 감사한 일이라 여기며, 꿈은 천천히 먼 기억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한마디가 내 마음을 다시 흔들었다.


"엄마, 아동문학 작가 돼 보는 거 어때?"


그 말이 내 안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꿈을 깨웠다. 그래, 아이와의 행복한 삶 속에서도 나의 꿈을 꿀 수 있구나. 우리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마음에도 따뜻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구나.


IE003542498_STD.jpg 한때 작가를 꿈꾸며 내가 만들었던 책상


그렇게 나는 아동문학의 세계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아이의 웃음이 떠오르고, 그 웃음이 문장 속에 살아 숨 쉬는 걸 느끼며 나는 다시 작가로서의 심장을 뛰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생계에 대한 걱정이 사라진 건 아니다.


"앞으로 50 이후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100세 시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이런 질문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걱정들이 내 꿈을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그 꿈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지금 이 과정 하나하나가 저축처럼 쌓이고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그것이 내게 큰 보물, 그리고 선물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내 나이 마흔아홉. 중년의 나이에도 다시 꿈꿀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새삼 놀랍다. 다시 꿈을 꾸다 보니 잊고 있던 20대 시절의 소중한 꿈이 떠올랐다. 그때의 설렘, 그때의 긴장감이 지금 다시 내 삶을 활력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어쩌면 꿈은 나이를 묻지 않는다. 꿈을 꾸는 순간, 우리는 다시 젊어진다. 설레는 사람만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그 마음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쓰며, 그 속에 내 삶의 조각들을 담는다.


꿈꾸는 인생, 꿈꾸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들 아닐까. 가슴 뛰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이 글을 읽는 모든 중년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도 여전히 꿈꿀 수 있다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삶이 우리를 버티게 만든다면, 꿈은 우리를 다시 살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 두근거림 속에서 오늘도 한 줄을 쓴다. 꿈을 쓰는 사람으로, 다시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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