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서 러닝으로! 부모의 불안은 어디까지였을까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의 공통된 바람이다. 아이 아빠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천으로 이사 오고 어느 날, 아빠는 아이에게 자전거 한 대를 사주었다. 전학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고 또래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자전거는 생각보다 빠르게 아이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왔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 주변을 돌기 시작하자, 자전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하나둘 모였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아이들은 금세 친구가 되었다.
자전거는 단순한 탈것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자전거는 친구를 이어주는 다리였고, 대화를 여는 공통의 언어였다. 친구들 앞에서 멋지게 타고 싶다는 마음은 아이 스스로를 성장하게 했다. 더 잘 타고 싶어서,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연습을 시작했다.
스마트폰에서 아이는 자전거와 관련된 영상을 자주 찾아보았다. 기술을 배우고, 묘기를 익히고, 안전하게 타는 법을 익혔다. 스마트폰은 아이를 고립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놀이를 확장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그렇게 아이는 자전거를 점점 더 잘 타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의 관심은 '타는 것'에서 '고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자전거 부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자전거 공구를 하나둘 모았다. 브레이크를 조정하고 체인을 손보며 아이는 어느새 '자전거 박사'가 되었다. 친구들은 자전거가 고장 나면 아이를 찾았다. 아이 손을 거치면 자전거는 다시 굴러갔다. 아이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관심이 깊어질수록 욕심도 커졌다. 더 좋은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용돈을 모으고 또 모았지만 현실적인 벽은 높았다. 결국 아이는 '아빠 찬스'를 외쳤다. 자전거에 푹 빠진 아들을 지켜보던 아빠는 고민 끝에 조건을 달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사주겠다."
그 약속은 단순한 거래는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목표가 생겼고, 아빠는 아이의 열정을 인정했다. 그렇게 아이에게 새 자전거가 생겼다.
그러나 모든 관심이 그렇듯, 자전거에 대한 몰입 역시 점차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새 자전거가 생긴 이후 아이는 공부와 점점 멀어졌다. 새벽같이 일어나 라이딩을 다녔고,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아졌다. 친구들과 자전거를 바꿔 타다 고장이 나는 일도 생겼다. 수리와 튜닝에 대한 욕심은 커졌고, 집 안에 있던 물건들을 중고 거래 플랫폼에 올려 판매하기도 했다.
가장 불안했던 순간은 따로 있었다. 아이는 자전거 브레이크를 떼고 다니기 시작했다. 더 잘 타는 아이처럼 보이고 싶어서, 더 빠르게 달리고 싶어서였다. "난 잘 타니까 괜찮아." 아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부모의 눈에 아이는 늘 위태로워 보였다. 멋있음과 위험 사이의 경계는, 아이에게 너무 얇았다.
아이의 세계에서 자전거는 거의 전부가 되었다. 부모는 불안했고, 아이는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갈등은 쌓였고, 결국 폭발했다.
▲부서진 자전거와 멈춰 선 아이. 부서진 자전거 옆에서 생각한 것들 ⓒ 이효진
아빠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아이의 자전거를 부숴버렸다. 그 순간 아이는 크게 놀랐고, 집을 나갔다. 자전거는 더 이상 '친구를 이어주던 다리'가 아니었다. 갈등의 상징이 되었고, 상처의 중심이 되었다. 그날 이후 아빠는 자전거보다 더 부서진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오래 생각하게 됐다. 다행히 아이는 그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자전거 없이 지내고 있다. 아이의 마음속에서 자전거가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부모는 다만 그 열기가 서서히 식기를, 아이가 다시 균형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부모의 마음은 늘 모순적이다. 아이의 열정을 응원하고 싶지만, 그 열정이 아이를 다치게 할까 두렵다. 아이를 믿고 맡기고 싶지만, 아직은 어리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이번에는 자전거가 아니었다.
"친구랑 러닝 뛰고 올게."
요즘 러닝 열풍이 불고 있다더니, 중학생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러닝을 하는 움직임이 생겨나는 듯했다. '자전거' 대신 '러닝'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부모의 마음은 복잡하면서도 묘하게 가벼워졌다. 솔직한 심정은 이랬다. 자전거보다는 낫다.
러닝은 자전거보다 훨씬 안전해 보였다. 복잡한 장비도 필요 없고, 준비물이라야 운동화 정도다. 물론 운동화에도 욕심이 생길 수 있겠지만, 자전거에 들어가던 비용과 비교하면 차이는 분명했다. 무엇보다 브레이크를 떼고 달릴 위험은 없다. 넘어지더라도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니, 러닝도 그냥 뛰기만 하는 운동은 아니었다. 다치지 않으려면 뛰기 전후로 스트레칭을 해야 하고, 자세도 중요하다고 했다. 자전거를 탈 때처럼, 아이는 이번에도 영상을 보며 하나하나 배워나갈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엄마인 나의 반응이 달랐다. 아이의 관심사에 불안부터 앞서지 않았다. 오히려 나 역시 러닝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달리는 법, 호흡법, 초보자를 위한 러닝 루틴. 몇 개의 영상을 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 해볼 만한데?'
2026년 새해 목표를 세워본다. 건강. 그리고 가족이 함께 무언가를 해보는 경험.
사춘기 아이와 대화가 점점 줄어드는 시기에, 나란히 뛰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시간이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며 깨닫는다.
아이가 빠져드는 '관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관심이 아이를 현실로부터 끊어내는지, 아니면 현실과 더 깊이 연결해 주는지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부모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자전거는 아이를 세상과 연결해 주었고, 동시에 균형을 잃게 만들기도 했다. 러닝은 다시 한번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관심사다. 이번에는 몸도 마음도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그리고 부모 역시 옆에서 함께 뛰며 아이의 속도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춘기 아이가 러닝을 통해 몸도 마음도 조금 더 건강해지기를. 그것이 지금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응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