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지지 않는다는 아이의 말

스마트폰 밖 다른 재미와 성취를 원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아이가 현관문 앞에서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이의 한 손에는 스마트폰이 꼭 쥐어져 있었지만, 어깨는 너무 허전했다. 순간 머릿속이 스쳤다.


'뭔가 빠졌다!'


알고 보니 책가방을 메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도 눈이 동그래져 놀라고, 나도 놀라고. 결국 둘 다 얼굴을 마주 보며 "하하하" 웃어버렸다.


처음에는 웃었지만 그럴 일이 아니었다


책가방보다 스마트폰이 더 소중한 아이. 처음에는 웃어 넘겼다. 하지만 아이의 생활을 들여다보니 웃을 일이 아니었다. 스마트폰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아이의 세계가 되어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 학교 다녀온 뒤에도 스마트폰. 도무지 손에서 떼지 못한다.


"차라리 이럴 거면 밖에 나가서 친구들이랑 뛰어놀아."


나는 어느 순간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밖에서 뛰어노는 줄 알았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물었다.


"잘 놀다 왔어?"


"응, 잘 놀다 왔어."


대답도 당당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동네 공원을 지나던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아이 뿐 아니라 여러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그 모습이 우리가 알던 놀이터 풍경이 아니었다. 미끄럼틀이나 그네는 뒷전. 아이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공원은 무료 와이파이 존이었고, 아이들에게는 '놀이터'가 아니라 '스마트폰 장소'였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말했다.


"학교 끝나면 바로 집에 와."


"조금만 놀다 올게."


아이는 학교 끝나면 늘 공원으로 향했다. 들어오지 않는 아이에게 전화해 보면 늘 같았다.


"어디야?"


"그 공원."


내 얼굴엔 한숨이 번졌다.


"또 스마트폰 하는 거지? 집에 들어와."


"알았어. 조금만 더 놀고 갈게."


"너 노는 거야? 스마트폰 하는 거야?"


"아니야. 스마트폰도 하고, 그네도 타고, 술래잡기도 해."


아이의 말대로라면 스마트폰과 놀이가 함께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스마트폰 전쟁이었다.


사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는 예전부터 아빠가 쓰던 중고 스마트폰을 서랍에서 꺼내와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게임이나 영상을 보곤 했다. 그때도 나는 "스마트폰 좀 그만 해" 하며 잔소리를 했다. 그러다 차라리 정식으로 사주자 싶어 새 스마트폰을 사주었다. 그러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관련 기사 : 미루고 미루던 초4 둘째의 스마트폰 개통, 체결한 구두 합의).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일이 있었다. 아이가 스스로 방과 후 영어 수업을 신청하고 싶다고 했다. 태권도 학원도 다니고 싶다고 했다. 나는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공부에도 관심이 있구나.'


아이는 심지어 스케줄을 짜보며 "한자도 계속 해야 하고, 피아노도 계속 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영어는 잘 못하니까 꼭 해야 하고, 한자는 평생 필요하니까 끝까지 해야 한단다. 나는 놀랐다. 스마트폰에 빠져 세상에 무관심할 거라 생각했던 아이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IE003515276_STD.jpg 요즘 아이가 빠진 재미, 피아노


더 인상 깊었던 건 피아노였다. 아이는 피아노를 정말 좋아했다. 집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 이것저것 배운 곡을 뽐내며 연주하곤 했다. 스마트폰만 붙잡을 줄 알았던 아이가 피아노 앞에서는 누구보다 즐겁게, 누구보다 집중하며 음악에 빠져들었다.


"이제 그만" 소리에 나온 의외의 대답


사실 예전에 이런 사건이 있었다. 아이는 늘 스마트폰에 몰두해 있었고, "그만해라, 이제 그만!"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았다. 나도 지쳐서 그냥 두고 말았을 때였다. 그런데 남편이 옆에서 "이제 그만!" 하고 단호하게 말하며 스마트폰을 거두어들였다. 그런데 그 순간, 아이가 의외의 대답을 했다.


"아빠, 고마워요."


남편은 순간 얼어붙었다고 했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5분만 더요"라거나 "게임 한 판만 더 하게 해주세요"라고 말했을 텐데, 우리 아이는 고맙다고 했으니 말이다.


"왜 아빠한테 고맙다고 한 거야? 아빠가 못 하게 했는데 뭐가 고마워?"


남편이 묻자 아이는 이렇게 답했다.


"저도 멈추고 싶었는데 멈춰지지 않았어요. 누군가 멈추라고 해주길 기다렸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우리 부부는 멍해졌다. 아이 자신조차 스마트폰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 그래서 어른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지치면 그만두는 방식으로 아이를 방치했는데, 그게 아니라 아이가 멈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었다.


아이 또한 스마트폰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통제가 필요하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아이가 영어와 태권도를 하고 싶다고 먼저 말했던 게 아닐까. 스마트폰 안에만 갇히지 않고, 다른 재미와 성취를 찾고 싶었던 마음 말이다.


결국 부모의 역할은 단순히 "하지 마"라고 막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마트폰에만 빠지지 않고 더 넓은 세계와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오늘 아침도 아이는 스마트폰을 꼭 쥔 채 학교에 나섰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스마트폰만큼 소중히 품고 있는 또 다른 마음, 새로운 배움과 도전에 대한 갈망이 아이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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