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원고 쓰는 게 어렵지 않아?

일상이 원고가 되는 사람

by 작가의식탁 이효진

방송작가로 살아가는 내게 친구들은 이렇게 묻곤 했다.


“매일매일 원고를 써야 하잖아.

창작의 고통이 장난 아니겠어.”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괜찮다고, 아니 어쩌면 어렵지 않다고.


“내 일상이 글의 소재가 되거든.”


방송작가의 하루는 늘 원고로 시작해 원고로 끝난다. 내 일상은 곧 일이었고, 일은 다시 삶이 되었다.


러프스케치.jpg 내 일상은 곧 일이었고, 일은 다시 삶이 되었다


내 글의 재료는 거창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의 기분, 친구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TV 속 연예인의 인터뷰 한 줄, 서점에 쌓인 베스트셀러의 제목. 똑같은 하루, 별것 없는 하루라도 나는 일부러 서점에 갔다.


요즘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가장 앞자리에 놓인 책들을 훑어보았다. 개봉 예정 영화 목록을 찾아보고, 신문을 넘기며 어떤 사건들이 세상을 흔드는지 살폈다. 시장을 돌며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쇼핑을 하며 유행을 눈에 담았다. 때로는 일부러 친구들을 만났다.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나는 늘 메모했다. ‘이거다’ 싶은 순간이 오면 메모지를 꺼내 적고, 사진을 찍고, 스마트폰 속 나에게 카톡을 보내 정리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메모들이 나를 작가로 만들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으로 살아남게 하고 있는지.


돌이켜보면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살았던 게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방송작가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대신 쓰면서도 사실은 매일, 나 자신의 이야기를 채집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동문학 작품을 쓸 때도 내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이야기를 찾으며 살았다. 이야기의 시작은 늘 아이들이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우리 아이들. 그들의 하루 속에서 ‘이야기가 될 만한 순간’을 포착하는 일은 이제 몸에 밴 습관이 되었다.


수업을 하러 오는 아이들의 말도 빠질 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 속상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웃던 표정 하나까지도 나는 메모노트 어딘가에 차곡차곡 저장해 둔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나의 어린 시절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어릴 때의 나는 어땠을까. 그때 나는 무엇이 그렇게 속상했고, 무엇을 말하지 못한 채 삼켰을까. 나는 종종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상상 속 기계를 타고 과거의 나를 만나러 간다.


어른이 된 내가 어린 나를 마주 보고 앉아 묻는다.


“그때, 너는 어떤 마음이었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시간은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간과 닮아있다.

어린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 앉는 순간. 그때 비로소 아이의 언어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일상을 통과하며 지금의 삶과 과거의 삶을 모두 이야기로 건져 올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의 삶이 곧 이야기이고, 지나온 시간 또한 여전히 현재형의 이야기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꽉 찬 하루로 살아낸다. 언젠가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순간을 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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