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완성되지 않은 책의 시간
아동문학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뒤로 내 일상에는 유난히 기다림이 많아졌다.
투고.
그리고 거절.
다시 투고.
가끔은 아무 소식도 없는 시간.
처음에는 출판사 메일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열어보았다. 혹시 놓친 연락이 있을까 봐, 스팸함까지 들여다보면서.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기다림이 나를 점점 말라가게 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방향을 조금 틀었다.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아 있기로.
출판사에서 답이 오지 않아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면 쓰자.
실제 삶에서 만난 작은 사건 하나라도 “이건 동화로 풀어볼 수 있겠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붙잡아 보자.
기다림의 시간을 멈춤이 아니라 축적의 시간으로 바꾸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투고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이 시간은 아날로그 시대의 편지쓰기와 닮아있다. 편지지를 고르고, 한 문장 한 문장 눌러 써 내려가고, 봉투에 넣어 우체통에 넣는 일까지는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상대의 시간이다.
편지는 잘 도착했을까.
읽기는 했을까.
혹시 나만 설레는 건 아닐까.
답장은 오긴 올까.
그 모든 질문을 안고도 나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기다림 자체를 조금은 좋아했다. 지금의 투고도 그렇다. 결과를 알 수 없어 불안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기다림 속에만 있는 고유한 설렘이 있다.
그리고 정말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한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출판사와 드디어 계약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오랜 기다림과 수없이 반복했던 퇴고, ‘이게 맞을까’라는 과정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계약 소식을 들었을 때의 감동은 단순한 기쁨을 넘어 그 모든 시간이 한꺼번에 보상받는 느낌에 가까웠다.
하지만 원고가 완성되었다고 해서 책이 곧바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원고를 다 쓰고, 퇴고의 과정까지 모두 마쳤어도 책은 금방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아동문학은 그랬다. 글 작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협업으로 비로소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그때에서야 몸으로 실감했다.
출판사에서 어렵게 그림책 작가를 섭외했고, 이제는 러프 스케치를 기다리는 시간이 시작됐다.
러프 스케치.
본격적인 그림 이전, 스케치 이전의 스케치.
주인공의 얼굴, 몸짓, 표정의 방향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 그림들을 보는 동안 나는 다시 작품을 구성하던 때로 돌아갔다. 사건을 쌓고, 인물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얹고, 이 장면을 여기까지 밀어붙여도 될까 고민하던 순간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출간 작가로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 한 사람이 쥐고 있던 바통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어달리기처럼 바통을 터치하고, 기다리고, 다시 믿고 맡기는 일.
그 과정은 분명 더디다. 하지만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고, 속도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는 작업이라는 걸 나는 이 기다림 속에서 배웠다. 그 기다림의 과정은 지금도 현재형이다.
며칠 전에는 그림 작가님의 사정으로 최종 출간이 조금 더 늦어질 것 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을 하루라도 빨리 세상 밖으로 꺼내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잠깐, 아주 잠깐 실망감이 스쳤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 또한 조금 더 인내하고 조금 더 기다리라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딱딱 정해진 일정표대로만 흘러가는 삶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모든 과정에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끼어들고, 그 변수들 덕분에 흐름은 느려지기도, 방향을 틀기도 한다.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 나는 다시 또 다른 작품을 쓴다. 그리고 또 다른 출판사의 문을 두드린다.
이번에는 얼마만큼 기다려야 문이 열릴까.
이제는 그 질문 앞에서 조급해지기보다 겸허해지기로 한다. 기다림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을 포함한 이 과정을 한 번쯤은 즐겨보기로.
쓰는 사람으로 살아남는다는 건 어쩌면 이 기다림과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선택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