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마음을 건네기 위한 존재다
우리는 흔히 글쓰기를 ‘잘 쓰기 위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쓰기 학원이 생기고, 글쓰기 수업을 찾아다니고, 문장을 고치는 법과 구조를 배우려 애쓴다. 그만큼 글쓰기가 이 시대에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는 걸 모두가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글을 쓰게 되는 가장 오래된 이유는 조금 다른 곳에 있다. 글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건네기 위해 시작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 사실을 나는 대학교 시절, 아주 뜻밖의 만남을 통해 처음으로 깨닫게 됐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 글쓰기 수업을 해보고 싶어 신문에 작은 광고를 냈다.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몇 학년인데요?”
습관처럼 물은 질문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전화기 너머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아니라요. 제가 하고 싶어서요. 제가 배울 거예요.”
50대 아주머니였다.
당황스러웠지만 우리는 만나 보기로 했다. 마주 앉자마자 아주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사실 저는 한글을 몰라요.”
그 말은 담담했지만 곧이어 나온 이유는 마음을 깊이 흔들었다.
“아들이 군대에 갔어요. 요즘 자꾸 집으로 편지가 와요. 근데… 저는 그 편지를 읽을 수가 없어요.”
편지는 늘 남편이 대신 읽어주었다고 했다. 답장도 남편의 손을 빌려야 했다.
“사랑하는 아들한테 직접 읽고, 직접 답장하고 싶은데 그게 너무 답답했어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글을 배운다는 일이 출판이나 성취가 아니라 ‘관계’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아주머니에게 글쓰기는 꿈도, 목표도 아니었다. 그저 아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아주머니는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엄마가 글을 모른다는 걸 아이들은 모른 채로 지내게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주머니가 한글을 읽을 수 있도록 천천히, 그리고 성심껏 가르쳤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
글자를 알게 되자 아주머니의 세상은 조금씩 넓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머니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저 남편이랑 연애 편지 주고받아요.”
뒤늦게 시작된 부부의 연애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에게 직접 쓴 첫 답장을 보여주시던 날, 아주머니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분은 늘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자취하던 내게 “배고프지?” 하고 물으며 밥을 차려주기도 했고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가끔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다. 결혼 이야기, 좋은 배우자를 고르는 방법 같은 인생 이야기들.
나는 글을 가르쳤지만 그분은 나에게 인생을 가르쳐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은 제자이면서 선생님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 나는 이제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그 아주머니를 떠올리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내 아들이 군대에 가게 되면 나 역시 편지라는 수단으로 글을 쓰게 되겠구나.
글은 나의 성장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구나.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전하고,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멀리 있어도 마음만은 곁에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도 글은 충분히 쓰일 수 있겠구나.
요즘 나는 사춘기 문턱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노트 한 권을 따로 마련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 편의 글로 남긴다. 카톡으로 금세 보낼 수 있는 말들이지만 손으로 한 장 한 장 적어 내려가는 글은 확실히 다른 온도를 가지고 있다. 시간이 걸리고 마음이 더 들어가고 그만큼 말의 무게도 달라진다.
‘쓰는 사람으로 살아남는 방법’은 어쩌면 거창한 데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 장 한 장 써 내려가며 내 주변의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따뜻함을 건네고 그 마음이 조금 더 깊이 닿기를 바라는 일.
글쓰기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조금 더 따뜻하게 이해하려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그 방식으로 오늘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