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견디는 기술로서의 글쓰기
아이들이 크면서 엄마와 놀아주지 않게 되었다. 사춘기가 오고, 중학교에 가고, 각자의 세계가 생기면 엄마는 자연스럽게 한 발 물러난다. 남편은 일을 하러 나가고 집에는 혼자 남아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까지 하고 나니 아는 사람도, 편하게 부를 이름도 아직은 없다. 약속 하나 없는 오후, 누군가에게 “오늘 뭐 해?”라고 묻는 일조차 괜히 어색해지는 시간. 그때 찾아오는 감정은 대개 비슷하다.
외로움.
나는 그 시간을 글을 쓰며 견딘다.
원고를 쓰고,
노트를 펼치고,
쓸 말이 없어도 일단 앉아 있는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쓰는 동안에는 혼자가 아니다.
내 안에 있던 말들이 하나씩 고개를 들고, 그 말을 받아 적는 동안 시간이 흐른다.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옆자리에 앉는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노후 준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늘 말한다. 건강, 그리고 친구가 중요하다고. 그 말이 맞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새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몸이 아프면 밖으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고, 먼저 말을 걸 용기도 점점 줄어든다. 그럴 때 글쓰기는 아주 조용한 친구가 된다. 약속을 잡지 않아도 되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가만히 곁에 있어준다.
나는 친정 부모님을 떠올릴 때 글쓰기의 힘을 더 또렷하게 느낀다. 아버지는 나이가 드신 뒤 오히려 더 열심히 글을 쓰셨다. 거동이 불편해 어딘가로 나가지 못해도, 누군가를 만나지 못해도 글을 쓸 수 있었기에 괜찮다고 하셨다. 아니, 글을 쓰는 시간이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나이가 들며 ‘쓸모없어짐’이 아니라 글을 써 나감으로써 다시 존재가 회복되는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늘 진지하게 글을 쓰셨고, 정성을 들여 마음속에 쌓인 시간을 차분히 퍼 담아내셨다. 그 진심이 느껴졌기에
아버지의 모습은 나이가 들었어도 내게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남았다.
자식들이 다 크고 각자의 삶으로 흩어진 뒤에도 아버지가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 그 곁에는 글이 있었다.
반면 어머니는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로 사셨다. 자식이 전부였고, 자식이 삶의 중심이었다. 그러다 모두가 떠난 뒤 어머니는 갑자기 혼자가 되었다. 그 외로움을 어디에도 내려놓지 못했고,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도 배우지 못하셨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어머니에게도 자신만의 글이 있었다면 조금은 덜 외로우시지 않았을까.
글쓰기는 대단한 문장이 아니어도 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돈이 되지 않아도 된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무엇이 서운했는지, 무엇이 좋았는지 그저 적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글은 외로움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외로움을 견디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쓰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이건 직업으로서의 글쓰기가 아니라 삶을 버티는 기술에 가깝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혼자가 된다. 아이들도, 부모도, 누군가의 보호도 차례로 멀어진다. 그때 곁에 남아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