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쓰기 위해 내가 붙잡는 것들
방송 일을 하며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마이크 앞에 앉아 있는 게스트들뿐 아니라 진행하는 아나운서, MC들까지. 계약 기간이 정해진 자리에서 일하던 사람들, 제주라는 지역 방송국에서 만나 더 큰 무대를 꿈꾸던 사람들.
그들은 화려해 보였지만 늘 불안했다.
계약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다음 무대는 있을까.
나 역시 그 질문 앞에 자주 섰다.
나는 할 수 있을까.
방송국이라는 네모난 박스 안에서 그들은 이미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진행을 하면서 기획을 하고, 말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다음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SNS를 통해 그들의 ‘이후’를 보게 된다.
누군가는 강연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책을 냈고,
누군가는 국제 뉴스 평론가로,
누군가는 작가로, 앵커로
여전히 부지런하게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었다.
무대가 바뀐 것뿐, 그들은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 존재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나도 해볼까?
사실 그들 역시 처음부터 자신 있었던 건 아니다. 계약이 만료될 때마다 괴로워했고, 지금의 선택이 맞는지 끝없이 흔들렸다. 처음엔 두려웠던 그들도 회사를 벗어나며 알을 깨고 나왔다. 회사가 전부라고 믿었던 세계 밖에 생각보다 더 넓은 무대가 있다는 걸, 자신만의 강점과 열정이 닿을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걸 시간을 들여 증명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방송작가 일을 그만두고 온전히 나의 개인의 삶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사실 무대에 대한 미련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라디오도, TV도, 한국 방송도, 영어 방송도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을 오래 해왔으니까 이제는 충분히 지나간 시간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어느 순간 문득, 그 무대가 다시 그리워지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동시에 알았다. 지금의 나이, 그리고 스스로 그 무대를 박차고 나온 선택 앞에서 다시 같은 무대로 돌아가는 건 현실적으로도, 마음으로도 쉽지 않다는 걸. 그래서 질문이 바뀌었다.
꼭 그 무대여야 할까?
방송이라는 무대, 공중파라는 무대만이 전부일까?
그 질문 끝에서 나는 유튜브라는 새로운 무대 위에 섰다. 구독자는 많지 않다. 눈에 띄는 성과도 아직 없다. 출간 역시 여전히 멀다. 어쩌면 하나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도 아직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간을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며 정리한 생각들이 다시 글로 돌아오고, 카메라 앞에서 꺼낸 이야기들이 원고 위에서 더 단단해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꾸준히만 한다면 이 모든 과정이 분명 ‘쓰는 일’에 좋은 영향을 줄 거라 믿는다.
지금도 나는 원고를 쓰고, 아동문학 작가라는 또 다른 무대를 향해 투고하고, 거절을 받고, 다시 고쳐 쓰는 시간을 반복하고 있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알을 깨고 나온 뒤에도 자기 무대를 묵묵히 넓혀온 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무대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수없이 노력하고 버텨서 겨우 올라선 자리라는 걸 알기에 나 또한 쉽게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시 불끈 쥐고 해본다. 조급해하지 않고, 비교에만 머무르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알을 깨고 나온 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더 큰 무대를 걷는다. 무대의 이름은 달라도 걷는 사람의 마음만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