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써도 될까요?
요즘 나는 자꾸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이대로 가도 될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선택이 가족에게 짐이 되는 건 아닐까?’
글을 쓰고 있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수입은 줄었고 막막함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남편은 일을 한다. 나도 일을 한다. 하지만 현재 나의 수입은 작다. 그런데 우리 가정 형편은 좋지 않다. 대출금이 있고 생활비가 있고 집세와 가게세가 있다. 아이들 학원조차도 보내고 있지 못하다.
현재 나의 생계는 ‘글쓰기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사 이후 학생 모집은 다시 처음부터다. 겨우 두세 명. 이대로 계속 버텨야 하는 걸까?
나는 가끔 이 모든 짐을 남편에게만 지우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래서 생각한다. 식당 알바라도 해야 하나. 설거지라도, 서빙이라도 뭔가 당장 손에 잡히는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사실 이런 생각은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 방송작가 일을 잠시 쉬었을 때도 나는 동네 식당들을 기웃거렸다. ‘사람 구함’이라는 글자를 괜히 한 번 더 읽어보고, 괜히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을 때 남편은 화를 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러지 말라고. 당신은 글을 쓰는 사람이고, 아이들 앞에서 글을 쓰는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그 말이 위로였는지 짐이었는지 그땐 잘 몰랐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사를 했고, 다시 시작했고, 학생은 또 처음부터다. 남편은 버티고 있고, 때로는 투잡을 하고, 새벽까지 일하다 돌아와 지친 몸을 아이들에 맡겨 다리와 팔 등을 밟아 달라고 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더 조용해진다.
‘나만 너무 평화롭게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질문에서 자꾸 멈춘다.
이런 마음은 어쩌면 내가 자라온 집의 풍경과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늘 일을 했다. 아빠도 한때는 일을 했다. 옷가게를 했고, 그 덕분에 네 남매를 대학까지 보냈다. 집까지 장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세를 내지 않는 대신 다른 모든 비용이 늘 발밑에 있었다. 먹고사는 문제는 한 번도 느슨해진 적이 없었다. 노년에 들어서며 엄마는 더 불안해졌고, 아빠는 글을 썼다. 엄마는 원했다. 같이 나가서 일하길, 조금 더 안정적인 노후를, 자식과 손주에게 용돈을 쥐여줄 수 있는 여유를.
아빠는 꿋꿋이 글을 썼다. 그 갈등을 나는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 정리하고 싶지 않다. 아빠는 젊은 시절 충분히 일했고, 글을 쓰며 자기 삶을 지켜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아빠를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엄마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나는 아빠와 엄마의 한가운데쯤에서 서성이고 있다. 글을 놓을 수 없고, 그렇다고 생활을 외면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견디는 시간이 길고, 보상이 늦고, 때로는 다른 길로 새고 싶어지는 순간이 반복된다. 그래도 나는 아빠처럼 살고 싶지는 않고, 엄마처럼만 살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지금 이 불안한 자리에서 이름을 하나 붙여본다.
가족을 살리는 언어 노동자.
아직은 증명되지 않았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겠다는 나 스스로와의 약속으로.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왜 이렇게 버텨야만 살아남는 직업일까. 그리고 동시에 작가 역시 분명한 ‘언어 노동자라’는 생각도 든다.
베스트셀러 작가도, 방송작가도, 매일 글을 쓰며 생계를 고민하는 사람도 결국은 언어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이들을 ‘글로소득자’라고 부르더라. 그 말이 괜히 마음에 남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언어노동자가 되고 싶은 걸까.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이상과 풍류만을 좇는 글쓰기보다는, 지금의 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글쓰기.
‘그게 가능할까?’ 라는 질문을 요즘 자주 하게 된다. 답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나의 이야기만 쓰는 것도 아니고, 대중의 이야기만 따라가는 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꾸준히 쓰는 일.
쓰고, 메모하고, 기록하고, 정리하고, 출간으로 이어보고, 또 그 책을 세상에 알리는 일.
혼자서가 아니라 편집자들과, 출판사들과, 여러 사람들과 함께 조율해 가는 과정.
그 안에서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면, 그때 비로소 내 언어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게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글만 쓰고 아무 보상도 없을 때는 허하다. 좋아요 몇 개, 공감의 댓글 몇 줄로는 생활의 무게를 다 받아내기 어렵다. 그건 젊은 시절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보상 없이 일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는 조금 다른 글쓰기를 해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지키면서, 엄마로서의 역할도 놓지 않으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생활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 글쓰기. 그 글쓰기로 가족에게 조금은 따뜻한 것을 건네줄 수 있다면. 그게 내가 꿈꾸는 언어노동자의 삶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점검한다. 내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인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버텨야 할 이유는 충분한지. 이상만 남기지 않기 위해, 그러나 글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아직은 서툴고, 여전히 불안하지만 나는 한 발 한 발 언어노동자가 되어가고 싶다.
가족을 살리는 언어노동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