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거절, 그리고 다시 쓰기의 시간들
아동문학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날, 나는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넣어두었던 초고 파일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첫 번째 출판사에 투고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아무런 답장도 없는 침묵이었다. 메일함을 열어보는 일이 점점 두려워졌다.
‘내가 많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필요 없는 이야기일까?’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데, 기다림 속에서 하나를 깨달았다. 작가의 시작은 대부분 ‘무응답’에서부터다. 대답 없는 시간조차 이 길의 일부라는 것을.
그러다 아주 가끔, 한두 줄의 답장이 날아왔다.
“저희 출간 방향과는 맞지 않습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 문장이 나를 오래 붙잡았다.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다른 답장이 도착했다.
“구성이 좋습니다.”
“기획이 흥미롭군요.”
그리고 이어진 조심스러운 조언들.
“어린이 시선에서 다시 풀어보면 어때요?”
“사건이 단조로워요.”
“너무 교훈적입니다.”
그 몇 문장은 내게 너무 귀했다. 거절 속에서도 ‘읽고, 고민하고, 피드백을 보냈다’는 사실 하나가 나를 다시 일으켰다.
그때부터 나는 또다시 쓰기 시작했다. 구조를 뜯어고치고, 인물을 다시 세우고, 사건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는 동안 원고는 점점 더 단단해졌다.
그제야 알았다. 원고는 서랍 안에 있을 때는 절대 자라지 않는다는 것. 세상에 내밀어야만 비로소 숨이 트인다는 것.
하지만 또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편집자마다 바라보는 세계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어떤 편집자는 말했다.
“서술 방식이 정말 신선하네요.”
“캐릭터 설정도 좋습니다.”
그런데 다른 편집자는 같은 부분을 문제 삼았다.
“이 구조는 출간이 어렵습니다.”
어떤 출판사는 “이 주제 정말 좋습니다.” 라고 했지만, 다른 출판사는 “이 주제는 유행을 타서 힘듭니다” 라고 했다.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하나로 이어지는 정답은 없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그럼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지?’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았다.
때로는 ‘오독’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중요한 장면을 건너뛰고 판단하거나, 앞부분 몇 장만 보고 결론을 내려버리는 경우. 물론 하루에도 수많은 원고를 읽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마음이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리던 어느 날, 첫 투고 이후 4개월이나 지나 갑자기 연락을 준 편집자님이 있었다. 그때는 이미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마친 뒤였다.
사실 그 편집자님은 처음에는 “인물 하나를 추가하면 훨씬 좋아질 것 같아요.” 라고 조언해주었고, 나는 그 의견을 반영해 다시 썼다. 하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거절이었다.
그때는 많이 흔들리고 상처도 받았다. 처음엔 ‘작가님’이라고 부르셨지만, 거절 메일에서는 ‘선생님’으로 바뀌어 있었고, 문장의 톤도 묘하게 달랐다. 그래도 다시 고쳐 보내봤지만 결국 말 없는 거절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즈음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놀랍게도 수정본이 아니라 그 이전 원고를 보고 바로 계약 문의를 한 것이다.
“매절 계약을 원하시나요, 인세 계약을 원하시나요?”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말했다.
“인세 계약으로 하고 싶습니다.”
그 순간 알았다. 문제는 원고가 아니라 ‘눈’이었다. 어떤 시선으로 읽느냐에 따라 같은 원고가 빛나기도, 사라지기도 한다는 걸.
계약을 진행한 출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이의 심리를 너무 잘 묘사했어요.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 깊네요. 결말이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됐어요.”
그 말들이 조용히 마음을 데웠다. 맞는 독자를, 맞는 편집자를 만나는 것이 이 길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작가는 수용할 건 수용하되, 흔들리지 말아야 할 세계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게 내가 투고의 길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배움이었다.
지금도 나는 가장 아끼는 작품을 품고 있다. 주변 아이들도 가장 좋아했고, 내가 봐도 완성도가 가장 높은 원고.
나는 그 작품이 언젠가 정확히 읽어줄 단 한 사람, 그 세계를 사랑해줄 출판사를 꼭 만날 거라고 믿는다.
길은 앞으로도 더디고 험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두드릴 것이다. 또 기다리고, 또 두드릴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내 원고에게 말을 건넨다.
“사랑하는 내 원고야,
너 지금 많이 답답하지?
세상이라는 무대가 얼마나 궁금하겠니?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자.
너를 정확히 읽어줄 눈,
너를 품어줄 손,
너의 이야기를 가장 아름답게 펼쳐줄 곳은
분명 어딘가에 있어.
그날을 향해,
우리 천천히 함께 가자.”
이 모든 과정을 지나고 나서야, 나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쓰는 사람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지 글을 잘 쓰는 일이 아니라, 읽히지 않는 시간, 인정받지 못하는 시간, 무수히 흔들리는 시간을 견뎌내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도 확신을 주지 않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하고, 내가 믿는 세계를 때로는 누구보다 강하게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수정을 하고, 다시 시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 모순 같은 태도를 함께 끌고 가는 힘. 그게 바로 쓰는 사람으로 살아남는 힘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이 여정은 나를 시험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길어 올리는 시간이라고.
기다림은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맞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화려한 재능도, 한 번에 되는 행운도 아니었다. 결국 남는 건 단 하나.
견디는 사람만이 끝까지 쓸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내 원고에게 말한다.
“우리, 흔들려도 괜찮아.
다만 멈추지만 않으면 돼.
쓰는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 시간을 통과하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