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나의 운명이었어
국문과에 들어갈 정도로 글을 좋아했고, 학창시절 내내 글 쓰는 시간은 언제나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졸업 후 내가 선택한 길은 방송작가였다. 20년 넘게 라디오와 TV를 오가며 DJ와 MC의 말을 쓰는 일을 했다. 그 말들은 방송을 타고 흘러나갔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사라져버렸다.
휘발되는 말들.
기록으로 남지 않는 글들.
그리고 문득 허무함이 찾아왔다.
“이건… 내 말이 아니잖아.”
방송 원고 어느 한 줄도 내 이름으로 남지 않았고, 내 마음이 담긴 문장도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만의 글을, 내 이름으로 남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틈틈이 적어두었던 글들을 조용히 한데 모아 출판사에 보내보았다. 하지만 차갑게 돌아온 답은 “거절”이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팠다.
그런 나에게 뜻밖의 응원을 건네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들이었다.
“엄마, 아동문학 작가 해보면 어때?”
아들은 내가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아이들 마음을 잘 읽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함께 책을 읽으며 웃고, 울고, 이야기 나누던 시간들. 아들은 말했다.
“엄마, 아이들 책 정말 많이 읽어. 아동문학 베스트셀러도 엄청 많고. 엄마도 아동문학 작가가 될 수 있어.”
그 말이 마음 깊은 곳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내가 가장 자주 마주하는 사람은 어른도 아니고, 방송국 사람도 아니고 바로 어린이들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어쩌면 내 작품을 기다리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불현듯 깨달았다. 어린이날이 내 생일이라는 사실도 어쩌면 작은 암시였는지 모른다는 걸.
내 생일은 5월 5일 어린이날이다. 어릴 때는 내 생일이 어린이날이라 싫었다.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려 해도 다들 가족 행사 때문에 오지 못했다.
엄마가 되고 나서도 내 생일은 늘 뒷전이었다. 아이들 어린이날을 챙기느라 바빠 내 생일은 늘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이 날짜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어쩌면,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는 사람일지 몰라.”
운명이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아들의 말 한마디가 멈춰 있던 내 마음의 엔진을 다시 돌려놓았다. 이상하게도 글이 술술 써졌다. 처음 방송작가를 꿈꿨던 시절의 두근거림이 되살아났다.
어른을 대상으로 쓴 에세이들도 아이들의 눈높이로 다시 쓰자 새로운 이야기처럼 살아 움직였다. 완성된 초고를 가장 먼저 들려준 사람은 당연히 내 아이들이었다.
“엄마 너무 재밌다! 다음 화도 빨리 들려줘!”
아직 다 못 썼다고 하자 아이는 나보고 공부방에 들어가 동화를 완성하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엄마, 빨리 마저 써줘. 다음 내용 너무 궁금해!”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6학년 아이도 말했다.
“선생님, 그 이야기요. 다음 편 꼭 들려주세요.”
아이들의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반짝임이 내 글에 온기를 넣어주었다.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확신이 생겼다.
‘그래. 내가 가야 할 길은 바로 여기였어.’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매일 말했다.
“넌 반드시 아동문학 작가가 될 거야. 이것은 너의 길이고, 너의 운명이야.”
그 말이 나를 밀어주고, 붙잡아주고, 다시 펜을 들게 한다. 아동문학 작가의 길은 누가 만들어준 길이 아니라 내가 걸어야 할 길이라고 이제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