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의 세계로 나아가다
주로 ‘쓰는 삶’을 살아온 내가 어떻게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방송작가로 일하며 아나운서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 역시 말로 무대 위에 서고 싶은 작은 로망이 피어났던 것 같다. 2019년 그 시기 유튜브는 ‘하면 돈 번다’, ‘성공한다’는 분위기가 이어졌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 흐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역 방송사에서 작가 일을 하면서 리포터 역할까지 함께 했던 덕에 편집과 말하기는 낯설지 않았다. 문제는 콘텐츠였다. 그래서 ‘일단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당시 나는 제주에 살고 있었고 채널 초기 영상들은 자연스럽게 제주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다 코로나를 만나며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한다는 필요를 절실히 느꼈고 결국 내가 꾸준히 이야기할 수 있는 영역, 초·중등 교육 콘텐츠로 축을 옮기게 되었다. 이미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주제라면 오래 지속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방향을 바꾼 뒤 벌써 4년이 흘렀다. 지금 내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2,370명. 수치보다 중요한 건 이 시간을 버텨오며 쌓은 경험과 끈기였다.
다만 채널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도 있었다. 나는 실제 방송 제작처럼 원고를 꼼꼼히 쓰고 촬영을 하고 정성껏 만드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대부분 큰 주제와 키워드만 정해두고 그때그때 말하기 연습을 하듯 촬영을 진행했다. 그렇게 해야만 본업과 가정에 소홀해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시간은 내 말하기 능력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이 방식으로도 충분히 나아갈 수 있다.”
완벽함보다는 꾸준함을 택한 것이다.
정성을 다한 영상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말하기가 탄탄해졌고 카메라 앞에서 나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방송에도 사람들이 반응해 주었다.
비록 소규모 채널이지만 간간히 협찬이 들어오기도 했고, 학부모들은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편이 뜨겁게 채워졌다. 유튜브를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숫자가 아니라 브랜드였다.
“아, 나에게도 이런 브랜드가 생겼구나”
그 사실을 실감하게 된 순간들이 이어졌다.
어느 날은 실제 팬이라며 전화를 걸어온 분도 있었다. 또 제주를 떠나 이사 온 직후, 그동안의 학생들과 이별하고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내가 자리 잡은 곳은 교육 수요도 약한 지역이라 학생이 거의 없었다. 수입이 없어 막막했던 그 시기, 예전에 한 구독자가 건넸던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 온라인으로 글쓰기 수업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때는 사정상 거절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나는 바로 준비해 온라인 수업을 열었다. 놀랍게도 학부모들이 한 명 한 명 진심을 담아 신청해주었다.
“유튜브 영상 보고 선생님 진심이 느껴졌어요.”라는 말과 함께였다.
유튜브가 나를 위해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준 셈이었다. 그 수업들은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유튜브는 그저 ‘영상 플랫폼’이 아니었다. 내 삶의 한 부분을 지탱해 준 다리였다.
어느 날은 한 학부모님께서 상담신청을 하시며 말했다.
“선생님, 방송도 하시죠?”
나는 20년 넘게 방송작가로 일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지만, 그분은 유튜브에서 ‘내가 방송하는 모습’을 보고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 모습에서 신뢰를 느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다시금 깨달았다.
요즘 시대 부모들에게 TV보다 더 가까운 것이 유튜브구나. 소규모 채널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영향력 있게 보일 수 있구나.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말하기 콘텐츠’가 훗날 강연으로 이어지는 작가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렇다면 나 역시 지금의 말하기 경험들이 언젠가 강연이라는 또 다른 장으로 연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결론은 하나다.
글쓰기와 말하기는 깊게 연결되어 있다. 쓰는 사람에게 말하기는 선택이 아니라 확장이다.
그러니 내가 유튜브를 해온 시간은 글쓰기를 소홀히 한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나만의 강점을 넓혀온 시간이었다고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말하기가 확장되면 글쓰기 또한 확장된다. 그리고 이 경험들이 언젠가 내 삶에 또 다른 용기가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나는 지금, 조용히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