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생계를 유지하며 얻은 깨달음
방송작가 일을 그만두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막막함’이었다. 프리랜서의 삶엔 퇴직금도, 휴직도 없었다. 일이 끊기면 수입도 함께 끊긴다. 그래서 ‘매달 꾸준히 들어오는 돈’이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하지만 당장 취업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경력은 글쓰기와 콘텐츠 제작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가장 오래, 꾸준히, 진심으로 해온 일은 결국 ‘글쓰기’라는 사실을.
매일 자료를 조사하고, 매일 원고를 쓰고, 매일 데드라인을 맞추던 그 루틴은 이미 내 몸이 되어 있었다. 그 리듬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글로 생계를 이어가는 또 다른 방법,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방송작가 시절, 나는 늘 아침에 사장실에서 신문을 가져왔다. 아날로그 시절의 신문은 내가 아이템을 찾는 가장 좋은 도구였다. 흥미로운 기사는 오려 붙여두고, 나중에 다시 쓸 것 같은 문장은 밑줄을 그었다. 기사 한 줄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떠오르면 별표를 쳐두었다.
인터넷 시대로 넘어온 뒤엔 방식만 달라졌을 뿐 습관은 그대로였다. 신문 제목을 노트에 적고, 키워드를 분류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검색해 읽었다.
이런 ‘기록하는 습관’이 어느새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습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어떨까?”
그래서 신문을 활용한 글쓰기 수업을 만들었다. 신문 어휘부터 기사 구조 파악, 사고 확장, 그리고 기사 속에서 글쓰기 소재를 뽑아내는 흐름까지.
신문 기사 하나가 아이들에게는 세상 읽기, 생각하기, 글쓰기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키우는 질문이 되어 주었다.
나는 방송작가였고, 때로는 리포터였고, 늘 마이크에 둘러싸여 살았다. 아나운서들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호흡하고, 어떤 방식으로 스크립트를 소화하는지 곁에서 가장 가까이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글만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말하는 법, 발표하는 법, 사람들 앞에서 생각을 전하는 법까지 자연스럽게 수업에 이어졌다.
아이들은 놀랄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학부모들은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보았다.
그렇게 글쓰기 + 발표 능력을 동시에 키우는 수업은 내 수업의 대표적인 강점이 되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왜 글쓰기를 다시 생계의 중심으로 삼게 되었는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오늘 쓰기 싫다고 해도, 내일 하기 싫다고 해도, 차근차근 해나가면 어느 순간 훌쩍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대로 나에게도 돌아왔다. 그 아이들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결국 매일 쌓아 올린 것들로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잘 안 돼도 계속해야 하고, 계속하다 보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실력이 되고, 그 실력은 결국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아이들의 글 속에서, 발표 속에서, 그 성장의 과정 속에서 나는 다시 일어섰다. 수업을 준비하며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메모하고, 더 많이 생각하며 나 역시 성장했다.
글쓰기로 생계를 유지하는 동안 나는 한 가지 진실을 배웠다.
사람은 결국, 매일 쌓아 올린 것으로 살아남는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나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