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뒤 나에게 보내는 글쓰기
아들이 저학년이던 시절, 우리는 나란히 앉아 ‘1년 뒤의 나에게 편지 쓰기’를 한 적이 있다. 아이에게만 시킨 글쓰기가 아니었다. 나도 같은 종이를 펴고 같은 질문 앞에 앉았다.
1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이면 좋겠니?
지금의 네가 그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뭐야?
아이의 편지는 아이다웠다. 한국사 박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
나도 나의 꿈을 아주 솔직하게 썼다. 유튜브 구독자 천 명.
나는 미래의 나에게 이렇게 썼다.
“어느새 구독자가 천 명이 넘었네.
천이라는 숫자, 예전엔 정말 꿈의 숫자였잖아.
얼마나 기쁘고 감격이니?
그동안 네가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 나는 다 알고 있어.
수업하느라, 아이들 돌보느라 늘 시간에 쫓기면서도
어떻게든 성실하게 해보려고 애쓰던 날들.
이불 속에서 더 자고 싶고,
그냥 평안하게 쉬고 싶었던 순간들이 정말 많았잖아.
그때마다 ~~이가 옆에서 “엄마 힘내” 하고 얼마나 많이 응원해줬는지.
그 누구보다 ~이 덕분에 엄마가 바라던 이 꿈의 숫자를 이룬 것 같아. 고마워.
그리고 너 자신에게도 고마워. 정말 열심히 잘했어.
흰머리는 더 늘었지만 오늘따라 더 멋있어 보여. 축하해.
그리고 앞으로 더 성장해 갈 너의 모습을 기대할게.”
1년 후, 나는 그 편지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 꿈의 숫자를 이뤄냈다. 구독자는 천 명을 넘겼고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었다. 아들의 꿈 역시 그 자리에서 자라고 있었다.
기적처럼 한순간에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다. 다만 분명한 건 있었다. 그 편지가 우리의 삶에 어떤 주문처럼, 다짐처럼 작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경험은 내 글쓰기 수업으로 이어졌다. 초등학생 제자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건넸다.
1년 뒤의 너는 어떤 모습이면 좋겠니?
지금의 네가 그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뭐야?
결과를 쓰게 하지 않았다. 과정을 쓰게 했다.
발표를 잘하는 내가 되기 위해
아침마다 씩씩하게 인사하려 애쓴 이야기,
거울 앞에서 혼자 연습하던 순간,
수업 시간에 손을 들었다가 떨려서 울어버린 날,
그래도 다시 “해볼게요”라고 말했던 하루.
그리고 마지막엔 이렇게 쓰게 했다.
"그때 그만뒀다면 어쩔 뻔했니?"
아이들은 글을 다 쓰고 나면 이상하게도 밝은 얼굴이 됐다. 자신이 걸어온 과정을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본 얼굴이었다. 그제서야 확신하게 됐다.
글쓰기는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마법은 아니지만 꿈을 향해 걷게 만드는 힘은 분명히 있다는 걸.
방황할 때마다 “너는 어디로 가고 싶었지?” 하고 다시 방향을 가리켜 주는 나침반 같은 존재라는 걸.
쓰는 사람으로 살아남는 방법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미래의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는 일. 오늘의 나를 너무 빨리 포기하지 않는 일.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장의 글을 남긴다.
그 글이 또 하나의 다짐이 되어 나를 조금 더 앞으로 데려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