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아주 거창합니다. 난데없이 '글쓰기와 나의 삶'이라니요? 누가 보면 무슨 대문호까지는 아니더라도 글 꽤나 쓰며 생계를 이어가는 이름 있는 작가의 회고록처럼 보일까 염려가 됩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런 글을 쓸 때에는 오히려 저처럼 작가지망생인 사람이 쓰는 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원래 무지하면 용감하기 마련이니까요. 뭘 모르는 사람이 할 말 못 할 말 다 쏟아낸다고 해서 죄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언제부턴가 글쓰기는 제 삶 속에 오롯이 들어와 앉아 있습니다. 마치 추운 겨울날 창밖에서 오들오들 떨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린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순식간에 제 속으로 들어오고 만 것입니다. 녀석은 저에게, 들어가도 되겠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네가 원한 게 이것 아니었어,라고 하는 듯 능청스럽게 고개를 들이밀었습니다. 딱 그때 이후로 글쓰기를 빼놓고 제 삶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에겐 매 순간마다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저께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으니 오늘도 어제에 이어 글을 쓰는 선택이 그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실컷 글을 써봤으니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절필하는 것입니다. '절필'이라는 이 낱말이 몹시도 거슬립니다. 누가 저에게 글을 쓰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제 글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이 선택지는 지금 당장 선택하지 않아도 사는 동안 늘 마주치게 되는 딜레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글쓰기에서 손을 놓으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하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글쓰기를 고집하면 세상의 참 많은 재미있는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아마도 이런 걸 기회비용이라고 하지요? 만약 글쓰기를 고집함으로써 다른 막대한 기회비용이 발생한다면 그건 잘못된 선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차라리 글쓰기를 포기함으로써 다른 곳에서 취할 수 있는 이익을 염두에 두는 게 현명한 방법일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글쓰기를 선택한 것에 대한 저의 기회비용은 극히 미미하거나 없습니다. 왜 제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따진다면 이유는 뻔합니다. 글을 쓰는 것이나 책 읽는 것 외엔 그다지 제가 관심을 두는 일이 없기 때문이겠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글을 씁니다. 출퇴근에 소요되는 다섯 시간 남짓 글을 씁니다. 전담수업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에도 글을 씁니다. 자기 전에도 글을 씁니다. 언제 어디에서든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어서 무엇이든 떠오르는 대로 글을 씁니다. 가히 제 삶에서 글쓰기를 뺀다면, 집에서 직장으로, 다시 직장에서 집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인생에 다름 아니겠습니다.
그런 저도 글이 쉽게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요? 일단 잠시 쉬어봅니다. 글이 내 손에 붙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이래도 저래도 안 될 것 같은 날은 하루라도 글쓰기를 거를 수 없으니 눈에 보이는 대로 마구 끼적이기 시작합니다. 누구라도 일이 잘 풀리면 그 반대의 상황을 가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 되는데 왜 굳이 미리 걱정을 해야 하나 싶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최악의 상황 따위는 생각지도 않으려 합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곧 내리막이 있듯 잘 되는 날이 있으면 그렇지 못한 날도 있는 법입니다. 그렇지만, 저의 경험을 미루어 감히 말하자면 내리막에서도 우린 글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글쓰기가 곧 삶이 되는 원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 아침마다 하루에 쓸 글의 양을 정합니다. 적게는 2편에서 많을 때는 5편 정도에 이르는 글을 쓰겠다고 다짐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타인과의 약속이 아니라 제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제 글의 첫 번째 독자이면서 최후의 독자인 저와 말입니다.
사실 먼 훗날 제가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볼 때 참 잘 살았다며 뿌듯해할 거라고 보장하진 못합니다. 그건 어떻게 살든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앞으로의 제 삶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최소한 제 삶 속에 끼어든 글쓰기를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