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집게의 신
이백 예순아홉 번째 글: 잘 뽑아야 할 텐데......
오늘 새로 맡게 될 학년과 1년 동안 제가 해내야 할 업무가 발표되는 날입니다. 아침부터 서로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펼쳐지는 날입니다. 또 누군가는 만족한 얼굴로 1년을 계획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위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체 내규에 근거한 기준에 따른 점수의 배점 상황과 개별 교사의 희망 사항을 고려하여 인사 조치가 이루어지지만, 딱 까놓고 이야기하면 당연히 교감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의 의중에 따라 갈리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신학년이 편성되고 나면 소문 아닌 소문이 정설이 되어 학교를 떠돌아다닙니다. 어느 학년의 아이들이 순한지 혹은 까다로운지, 학부모들은 어떤 학년이 가장 무난하고 협조적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솔직히 담임의 입장에서 봤을 때 말썽을 일으키기 쉬운 아이를 피하려는 심리를 마냥 탓할 수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사소한 일로 지속적으로 학교에 민원을 제기하거나 교사 개인 연락처로 밤낮없이 전화를 걸어대는 학부모를 만나면 교직 자체에 대한 회의감으로 인해, 속된 말로 그 한 해는 망하는 것입니다.
신학년이 배정되면, 그 학년을 맡은 선생님들이 앞으로 나와 단상에 마련된 여러 장의 편지 봉투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만약 자기가 맡게 된 학년에 여섯 개 반이 있다면 단상에 놓인 봉투는 모두 6개가 되는 셈입니다. 봉투 속에는 앞으로 자신이 만나야 할 학급의 모든 아이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고, 각 아이의 이름 옆에 있는 비고란에 뭔가가 적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아이, 한부모 가정의 아이, 다문화 가정의 아이, 도움반에 소속된 아이, 그리고 생활지도가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아이 등입니다.
6개의 봉투를 뽑을 때 통상적으로는 학년 부장교사가 가장 먼저 선택하게 되지만, 대개 통합학급(대다수의 일반 학생 외에 도움반 학생이 포함된 학급)을 희망하는 선생님들이 먼저 뽑게 됩니다. 왜냐하면 도움반 학생을 맡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학생 서너 명을 가르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관내에서의 타학교 이동 시에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근 시 가산점은 자신이 희망하는 학교에 옮길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므로 통합학급을 희망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먼저 물어보게 됩니다. 물론 이 경우에 여섯 개 학급 모두에 도움반 학생이 있다면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어째 상황이 좀 웃기지 않습니까? 1년 동안 함께 생활하게 될 아이를 뽑기로 정하다니 말입니다.
이런 것도 사람의 일이다 보니 어떤 봉투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아이의 이름이 있듯, 또 다른 봉투 속에는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야말로 족집게의 신이 강림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정말이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잘 뽑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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