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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Feb 26. 2024

티처콜 포기

이백 일흔세 번째 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가서야 쓰겠습니까?

올해 들어 생각지도 못했던 서비스를 하나 받게 되었습니다. 일명 티처콜, 말 그대로 선생님들의 전화라는 얘기입니다. 이 티처콜은 일단 일과 시간 전이나 후, 그리고 휴일엔 원천적으로 학부모의 전화가 차단되는 서비스입니다. 그분들이 보내는 메시지도 교사의 개인 번호로 들어오긴 하나, 티처콜 앱에 들어가서 답장을 보내면 마찬가지로 교사의 개인 폰 번호가 노출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서 요즘 같은 때에 어찌 보면 반가운 서비스라 할 수 있습니다.


첫 담임 인사는 저도 이 티처콜로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 고민 아닌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런다고 해서 속칭, 악성 민원을 남발하는 학부모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직접적인 괴롭힘(?)이 어느 정도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나, 마음만 먹는다면 일과 시간 중에도 얼마든지 전화가 폭주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지요. 게다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인 법입니다. 이렇게 애초에, 소통에 있어 제한을 두면 서로 간에 불필요한 불신감만 키우기 마련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극성스러운 학부모를 아직 못 만나봐서 그러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시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주말 밤 12시 반에 전화가 와서 새벽 2시까지 통화한 적도 두어 번 있었습니다. 다만, 이런 소수의 극성 학부모 때문에 대부분의 선량한 학부모들과의 소통에 제한을 두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경우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방금 큰마음먹고 카카오톡 일반채팅방으로 학부모들을 모두 초대했습니다. 제 휴대폰 번호도 공개하고 저장하시라고 안내를 드렸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거는 학부모의 태도가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 봤자 그런 분은 1년에 두세 분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런 두세 분으로 인해 나머지 스무 명이 넘는 학부모들과의 소통에 빗장을 거는 건 분명 현명한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표현해서 좀 뭣하지만,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가서야 되겠습니까?


지금의 제 판단 때문에 저의 1년이 앞으로 얼마나 고달파질지는 예상할 수 없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동료 선생님 중 어떤 분도 좋은 시스템을 두고 왜 사서 고생하려느냐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상황이나 성향에 맞추면 될 일이지 모두가 똑같이 이 시스템에 따라 움직일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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