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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Feb 27. 2024

오후의 풍경

이백 일흔네 번째 글: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슬슬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때마침 도착한 열차 안이 비좁기 이를 데 없습니다. 게다가 열차 카페 칸마저 없으니 입석 이용객들에겐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닙니다. 객실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겨우 자리를 잡은 곳이 좌석과 좌석 사이의 통로입니다. 많고 많은 자리 중에 왜 하필 여기에 서 있느냐는 듯 좌석에 앉은 누군가가 올려다봅니다.


별다른 수가 없습니다. 객차와 객차의 연결 통로로 나가야 합니다.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밖으로 나가는 게 차라리 마음은 더 편합니다. 밖으로 나가 보니 제대로 발 디딜 데도 없습니다. 화장실 입구에도, 세면대 앞에도 빼곡히 사람이 서 있습니다. 다음 칸으로 건너가 봅니다. 겨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습니다. 고달픈 건 사실이나 그래 봤자 20분만 버티면 됩니다.


일면식도 없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이들인지 알 재간이 없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각자 하는 일이 모두 다른 데다 생김새도 다양하지만, 똑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이들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더러는 누군가와의 약속 때문에 이동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고달픈 하루를 살아낸 기색이 역력한 얼굴들을 보면 영락없이 집으로 향하는 중일 것입니다.


하나 마나 한 소리겠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목적지로 향합니다. 몇몇은 피로를 달래려는지 좌석에 깊이 몸을 묻은 사람도 보입니다. 객실 두 칸을 지나치는 동안 책을 펴든 사람은 보질 못했습니다. 문득, 요즘 세상에 누가 고리타분하게 책을 읽고 앉았느냐고 큰소리치던 지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자기 뜻대로 쓰겠다는데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갑자기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집니다. 객실의 출입문이 줄곧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합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승하차 문 앞으로 사람들이 일제히 몰려듭니다. 이제 내릴 때가 된 것입니다. 저 역시 이번에 내려야 합니다. 하차 안내 방송이 나오고 나서 1분도 안 되어 열차가 다른 선로로 접어듭니다. 열차가 크게 한 번 휘청이고 사람들도 느닷없는 움직임에 균형을 잡기 바쁩니다. 열차가 어디쯤에서 선로를 변경하는지 익히 알고 있던 통근자들만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법 큰 역이다 보니 수백 명이 열차에서 내립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더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또 더러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합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계단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그렇게 해서 대합실에서 만났다가 다시 뿔뿔이 흩어집니다.


따뜻한 한 잔의 차가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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