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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Mar 06. 2024

본질에 집중

이백 여든두 번째 글: 글만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글쓰기의 본질은 글에 달려 있습니다. 글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그 글들이 모인 책의 제목을 뭘로 해야 하는지, 목차는 어떤 식으로 구상해야 하는지 따위가 중요하게 여겨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처음부터 이름을 알린 사람이 있었겠나, 하는 항변을 하고 싶습니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책의 표지에, 삽화에, 목차에, 그리고 머리말에 치중해야 한다면 과연 그런 책을 우리가 써야 할까요?


아마도 출판 관계자들이 이 글을 보면 참 무식한 소리를 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안 했으면 안 했지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는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출판 관계자가 악마라는 뜻은 당연히 아닙니다. 명색이 글을 쓴다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는 것입니다.


한 무명 가수가 있습니다. 젊을 때는 그래도 몇 군데에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웬만해선 그 어디에서도 찾지 않습니다. 그는 그러다 노래 부르는 감각을 잊어버릴 것 같아 무대에서 노래하는 꿈을 잇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격으로 밤무대 업소에 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종목인 발라드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업소에서는 요즘 추세에 맞게 트로트를 부르고 합니다. 꼭 그 무명 가수가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면 그동안 써 놓은 글을 보고 누군가에게서 책을 내보자는 제안이 들어오는 것이겠습니다만, 적어도 저 같은 경우엔 그런 일이 생길 확률은 거의 0%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아직은 책 쓰기를 할 때가 아니란 것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려니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생각이 들긴 합니다. 애초에 필력이 한참 모자란다는 건 저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나, 막상 그걸 인정하자니 서글프다고나 할까요?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언제쯤 제가 책을 낼 수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쓴다는 것이니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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