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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Mar 18. 2024

이해할 수 있지만, 명백한 이기주의

'이기주의'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접하고 자주 쓰는 말입니다. 어지간해서는 그 뜻을 모를 리 없습니다. 보다 정확한 뜻을 사전에서 한 번 더 확인해 봅니다.


이기주의: 다른 사람이나 사회 일반에 대해서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이나 행복만을 고집하는 사고방식, 또는 그러한 태도


의미가 꽤 거창해졌습니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뜻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보통 이기주의라고 하면 바람직하지 않은 것, 더 나아가서는 나쁜 것이라고 인식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습성을 가진 사람, 즉 이기주의자는 공동체 생활에 해악을 끼치는 자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오직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기주의자의 말과 행동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기주의에도 어느 정도는 이해되는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그릇된 마음입니다.


학년 초에 담임교사는 기초환경조사서를 써 오게 합니다. 아이를 처음 만난 담임에게는 꼭 필요한 자료입니다. 양식은 대체로 사람마다 다른데, 맨 마지막은 항상 학부모가 담임에게 남기는 '한마디' 코너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가장 무난하게 쓰는 분들이라면 한 해 동안 잘 부탁드리겠다,라고 씁니다만, 어떤 분들은 꽤 장황하게 적어서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장황한 내용을 요약하면 대개 이런 식이 됩니다.


우리 아이는 느려서 그렇지, 시간만 주고 기다리면 꼭 해내는 아이이니, 믿고 지켜봐 달라.

모른다고 아이를 다그치면 겁을 집어먹고 더 입을 다무니 한 번 더 친절하게 설명하면 이해를 하는 아이다.

아이가 예민한 성격이라 대인관계에서 오해를 사곤 하는데, 좀 더 시간을 갖고 아이를 지켜봐 달라.


혹시 눈치채셨습니까? 이 글 속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말입니다. 어찌 보면 아이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그 문제의 근원을 외부의 탓으로 돌린다거나 심지어 개선의 의지나 해결 의지 또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면 그 어떤 상황을 가정할 수 없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조금도 녹록지 않습니다. 마냥 한 아이를 기다려 줄 수 없는 곳이 학교 사회라는 걸 과연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요?


정말 아이의 문제점이 개선되길 바란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글을 적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이는 느린 경향이 크니 말과 행동이 조금 더 빨라질 수 있게 지도해 달라.

선생님의 질문에 답할 때나 문제를 풀 때 아이가 모르면 한 번만 더 친절하게 설명해 달라.

아이가 예민한 성격이라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니 교우관계 지도에 신경을 써 달라.


저 역시 교사이기 전에 두 아이를 이십여 년 간 길렀던 아비였으니 그들의 말이나 바람을 왜 모르겠습니까?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해도 자기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그 순진무구한 마음만 놓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좋은 선생님의 최소 조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이에게 인격적 감화를 주는 선생님, 빈틈없는 생활지도로 아이의 문제행동을 교정하는 선생님, 아이의 미래에 확고한 목표를 심어줄 수 있는 선생님이 누가 봐도 가장 이상적인 선생님인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대하든 자기 아이를 한 번 더 살펴봐 주고, 세심하게 신경 써 주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으로 인지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회적 시선을 신경 쓴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런 생각들이 널리 퍼져 있는 것도 모자라 너무도 당연시 되는 그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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