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 왜 하고 있을까요?
2주 뒤에 생존수영교육에 돌입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에 2시간씩, 총 5일 동안 수영장에서의 이론을 포함한 실기교육 10시간으로 되어 있지만, 올해에는 2시간을 제외한 8시간, 즉 나흘 간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오고 가는 소요 시간 30분 정도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는 하루에 1시간 30분, 총 교육 기간 4일을 합산해도 6시간 될까 말까 한 정도입니다.
알다시피 생존수영교육은 세월호 참사 이후 시행된 교육 정책입니다. 유사시 해상 재난 및 사고에 대비해 학생들 개개인에게 생존 능력을 키운다는 취지에서 생긴 정책이라는 얘기입니다. 그 취지로 본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긴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정책은 변죽 울리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어놓고는 시원하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고, 언 발에 오줌을 갈겨놓고는 따뜻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까놓고 얘기해서, 세월호 참사가 학생들이 수영을 못해서 그만한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고였던가요? 규정을 위반한 수하물 운반 및 선장의 직업의식 부재와 이기적이고 몰상식적인 대처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세월호 참사 아니었던가요?
물론 이와 관련해서 보다 엄격하게 관련 법령을 재정비하고, 항해 관계자들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뒷받침되겠지만, 전국적인 학생들의 생존수영교육 실시라는 발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터무니없을 뿐입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누구의 배를 불리기 위한 교육인지 알 수 없습니다. 실제로 이 때문에 지역의 영세 수영장이 보다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 관광버스 업계의 고정적인 대량 고객이 확보된다는 것에선 긍정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이 학생들의 해상에서의 안전에 그만큼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고학년으로 갈수록 생존수영교육에 대한 여학생들의 참여율은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벗은(?) 자신의 몸이 친구들에게 노출되는 게 싫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비단 여학생에게만 국한되진 않습니다. 체격이 큰 남학생 역시 놀림감이 되기 싫어 수영하는 대신 참관교육을 신청하곤 합니다. 이 참관교육은 말 그대로 비디오로 안전 교육을 하거나, 물속에 들어가 수영 중인 학생들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학급 전체의 1/3 이상이나 되는 참관교육자가 있다면 생존수영 교육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생존수영 교육은 반드시 필요해서 생긴 게 아니라 어떤 특정한 사람들 혹은 단체에서 내놓은 즉흥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 하는 생각이 들 테지만, 탁상행정이 주특기인 우리나라로 본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습니다. 그런 근시안적인 정책이 별 비판 없이 무분별하게 수용되고 시행된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일선 현장에 있는 교사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있습니다. 그건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나면 생겨났지, 이미 하고 있는 일이 없어지는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정책을 시행하든 충분한 숙고의 과정이 필요하고 다각도에서의 여론 수렴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것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원인을 따져보고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미래지향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대신, 당장의 가려움을 해소할 임기응변식의 정책들이 남발됩니다. 그게 오십 년 이상 살아본 경험으로 판단한 우리나라의 현실이고, 이십오 년째 몸담아 온 일선 현장에서 느낀 우리나라 교육계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만약 어떤 학교 학생들이 비행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다가 대형인명사고가 일어나면,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운행 중인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둘러메고 뛰어내리는 교육을 시킬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사고가 테러 집단에 의해 자행된 것이든, 기상 악화 때문이든, 아니면 기장 혹은 부기장의 과실에 의한 것이든 관계없습니다. 우리나라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