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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May 15. 2024

의미 없는 스승의 날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압니다. 그런데 저는 왜 '라고 합니다'라고 표현할까요? 현직에서 25년째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제가 이 날을 모를 리가 전혀 없는데 말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건 말건 간에 저는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는 게 조금도 반갑지 않습니다. 더 솔직히 말해서 요즘 말로 극혐입니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고요? 요즘 어느 누가 학교 선생님을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요즘 스승이라는 호칭을 붙여도 손색없을 만한 선생님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이 평가 속에는 당연히 저도 포함됩니다. 제가 여기에서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표현하는 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는 걸 얘기하려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 새 정말 스승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아 마땅한 그런 선생님을 본 적은 있는지요?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최근 10년 사이에 같은 교사로서 충분히 존경을 표할 만한 분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사실 이건 누워서 침 뱉기 격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리끼리라도 기념해야 할 오늘 같은 날에 이런 식으로 말하다는 건, 결국 부메랑에 독을 묻혀 던진 것이나 다름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선생님이 훌륭하냐를 따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 잣대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일 테고, 그런 잣대 또한 반드시 타당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전 이것 하나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두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이 교사가 되는 지금의 이 시스템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해도 대체로 우리나라에서 교육받은 사람 중 성적이 우수했던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이해나 배려 혹은 양보의 자세가 부족한 채로 성장해 왔습니다. 그들에게 누구도 그걸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깨우치기도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이런 인성적 자질의 부족은 그들의 탓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질이 다소 부족해도,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모든 면에서 면죄부를 부여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공무원이 철밥통이 되고, 정시에 에누리 없이 퇴근하고, 절대 야근이 없으며, 육아 휴직 등의 제도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보니, 한때는 교사라는 직업이 최고의 주가를 누리기까지 했습니다. 몇 가지 비위 사건에 휘말리지만 않으면, 또 본인이 그만두지 않으면 이런 고용 불안의 시대에 평생직장 아닌 직장이 되어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이런 모습들이 심심찮게 연출됩니다. 1년에 한 번 가는 소풍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귀교 시간을 정할 때 반드시 퇴근 시간 전에 와야 합니다. 아무리 중요한 의논 거리가 있더라도 퇴근 시간이 되면 논의 자체가 다음으로 미뤄집니다. 머리를 맞대고 가장 좋은 선택지를 찾아내려는 노력도 소용없습니다. 여러 여건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이해는 가능하지만, 서비스를 통해 교사의 개인 연락처를 가리고, 업무 시간 외엔 학부모로부터의 사적인 연락을 차단합니다. 먼 곳도 아닌 학교 내의 강당에서 일과 후에 학부모를 초청하여 아이들이 참여하는 행사를 하는데, 그날 하루를 희생하고 기꺼이 참석하여 아이들을 격려하는 담임선생님이 없습니다.


한 번 더 이번엔 제 얼굴에 제가 침을 뱉어보려 합니다. 저는 늘 생각합니다. 저는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만 선생님이기를 원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저는 스승이 되고 싶은 선생님이 아니라, 직업인으로서의 훌륭한 기능을 가진 교사가 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교육 시스템에도 문제가 상당히 많고, 학부모의 인식에서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아직 많지만, 무너져 가는 교육을 올바로 세우는 길은 우리가 먼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길이 선행되는 것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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