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할 시점입니다. 땅을 고르고 적당한 깊이에 씨를 뿌렸습니다. 네, 구석구석 제 나름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뿌리려고 애도 써보았습니다. 뜻대로 자라지 못한 것들도 더러 눈에 띄지만, 대체로 만족스럽게 자라는 모습들도 확인했습니다. 꽃도 피고 열매도 맺었으니 이제 거둘 건 거둬들여야 합니다. 3월부터 시작될 새 농사의 기초를 다져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다음 농사에도 그나마 풍작에 가까운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겨나려 합니다. 바로, 지은 농사의 규모에 비해, 그동안 각고의 노력과 수고에 비해 눈에 두드러지는 결실이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겠습니다.원래 자식 농사가 그런 것이고, 따지고 보면 저처럼 학교에서 1년 동안 제자들을 길러내는 것 역시 이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법입니다.
작년 3월 2일, 27명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저야 2년 전부터 근무했으니 적지 않은 아이들이 이미 저에 대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상태였지만, 제게는 모두가 낯선 아이들이었습니다. 요즘의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사회성이 많이 부족하고, 휴대폰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사회성이 결여된 건 무엇보다도 코로나19의 영향이 컸습니다. 방역 지침 상 단체 행동보다는 개별 행동을 장려하던 근 3년 동안, 좀처럼 다른 친구들과 부대낄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어울릴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으니 그 속에서 얻어낼 것 역시 없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2023년은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는 것, 그러나 한창 배우고 익혀야 할 시기에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했던 그 3년이라는 시간은 우리의 상상치를 넘어설 정도로 아이들 세계에서의 인간관계를 황폐화시켜 버렸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누구도 믿지 못하는 풍토를 더욱 가속화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3월 2일, 그날이 떠오릅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정착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 분명 이들은 시대의 희생양들이었습니다. 일단 가르쳐야 할 것들은 대체로 가르쳤다고 자부해 봅니다. 물론 제가 1년 동안 아이들에게 양심의 한 줌의 거리낌도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장담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으니까요.
아이들이 나누는 얘기를 얼핏 들어봐도 지난 한 해의 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생각보다 괜찮아 보입니다. 아이들만 좋다면 다른 게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한 해 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하는데 힘썼으니 이만하면 칭찬은 못 받더라도 자기만족 정도는 해도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당연히 아쉬웠던 것은 다음 해로 넘기는 관례적인 절차는 남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