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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08. 2023

지하철 쓰기

첫 번째 글: 글은 어디에서든 쓸 수 있다.

매번은 아니지만, 1주일에 두 번 정도 스타벅스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캐러멜 마키아또를 시켜놓고 글을 쓰곤 했다. 요즘 카공족이 어떠니 저떠니 말이 많은 관계로 조금은 눈치가 보인다고나 할까? 굳이 갈 때마다 벤티 사이즈를 시키다 보니 6,900원의 자릿세를 내는 셈이다. 6,900원이 요즘 같은 시대에 크게 부담이 되는 금액은 아니다. 그렇지만 매번 밖에서 식사할 때마다 대략 5,000원 선에서 해결하는 걸 생각하면 적은 금액은 아닌 셈이다. 가끔 아내는 굳이 그렇게 큰 사이즈의 커피를 주문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점원이 다른 건 더 필요하지 않냐고 물을 때마다 지레 속이 뜨끔했던 건 사실이다.


겨우 그거 시켜놓고 몇 시간이나 죽치다 가려고 그러세요?


고마운 건 아직까지 그렇게 말한 점원은 없었다. 그래봤자 3시간 남짓, 단 한 번도 그 시간 이상을 넘겨 본 적은 없다. 그래도 갈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내돈내산이라고 하던가? 전혀 눈치 볼 필요가 없다고 해도 시치미 뚝 떼고 퍼질러 앉아 있을 만큼 내가 강단이 있는 성격은 아닌 모양이다.

멀쩡한 집 놔두고 굳이 스타벅스에 가는 이유는 명백하다. 글을 쓰기 위해서다. 그동안은 블로그에 계속 글을 썼고, 대략 1달 전인 6월 9일에 브런치 작가에 선정된 이후로는 브런치 스토리에 올릴 글을 쓴다.

그다지 알뜰한 타입은 아니나 내친김에 계산을 해봤다.


스타벅스에서 글 쓰는 비용: 6,900원
지하철 이동하며 글 쓰는 비용: 3,900원(왕복 교통비 2,500원+캔커피 2개 1,400원)

단순 결과를 놓고 보니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글을 쓰는 것이 대략 두 배 정도 이득이다. 어차피 내돈내산 할 생각이라면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데다 눈치까지 안 볼 수 있다면 지하철 순례도 괜찮을 것 같아 한 번 나서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얼마의 시간 동안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타는 역에서 1호선 종점역까지 가려면 25개의 역을 지난다. 소요 시간 총 44분, 마찬가지로 돌아올 때에도 44분이 걸리니 왕복 88분이라는 시간이 확보된다. 이 정도면 내가 원하는 글을 두 편은 거뜬히 쓸 수 있는 시간이다. 글이 잘 풀리기만 한다면 세 편도 쓸 수 있는 데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몇몇 작가님들의 글까지 읽어볼 여유가 생긴다.


무엇이든 좋은 점만 있을 순 없으리라. 확실히 스타벅스 같은 커피 전문매장보다는 지하철 안의 소음이 많은 게 사실이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 너무 조용해도 잠이 잘 오지 않는 것처럼 이 정도의 소음은 글을 쓰는 데 있어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등에 짊어진 가방 안에 버젓이 노트북이 있지만, 다소 불편하긴 해도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글을 쓸 수 있다. 만약 글이 써지지 않는다면 어떤 글을 쓸지에 대해서도 꽤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결심하고 지하철에 올라타 글쓰기에 도전한 게 오늘로써 두 번째이다. 솔직히 얼마나 양질의 글을 썼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내가 대답할 수 없다. 어느 정도의 반열에 오를 때까지는 그 어떤 글이든 써야 한다는 게 글을 대하는 내 기본 마음가짐이다. 질보다는 양이라고 반드시 단정 짓는 건 아니지만, 질적인 면에 너무 치중한다면 그 어떤 글도 쓸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무엇이든 쓰고 봐야 한다. 질 낮은 글을 생산하는 하수(?)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한 편의 글에 공을 쏟아야 하는 건 사실이겠으나 그래도 난 보다 더 많은 글을 쓰는 데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글은 언제든, 그리고 어디에서든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물론 가장 쾌적하고 편안한 공간이 분명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늘 그런 곳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평소에도 출퇴근하며 지하철을 이용하는 40분 동안 글쓰기를 해왔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일단 타자마자 석에 몸을 바짝 붙이고 블로그를 혹은 브런치를 열려고 했다. 그러고 싶었는데 아직 자리가 나지 않아 다섯 번째 역 정차를 앞둔 지금 선 채로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 다리는 약간 아프지만 충분히 견딜 만하다. 어차피 앞으로 다섯 개의 역을 더 지나기 전에 많은 사람들(특히 젊은 여자들)이 거의 다 내리니까 그때 자리를 잡으면 된다.

다행스럽게도 예상했던 대로 중앙로역에서 자리가 생겼다. 오늘은 지하철 안의 풍경에 대해 써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름 주제를 정했다며 마음을 놓으려 했더니 사실상 그러긴 쉽지 않다. 지하철 객차 안의 모습에 대해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도 관찰을 많이 해야 하는데, 요즘 같은 때에 눈을 잘못 돌렸다간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하필 눈이 마주친 사람이, 자기가 예쁘거나 아름다워서 보는구나 생각하며 눈치를 준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치한쯤으로 여기고 바라보면 문제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눈치껏 알아서 해야 한다. 안 보는 듯하면서도 볼 건 다 눈여겨봐야 하고, 때론 다 봐놓고도 안 본 것 같은 시치미 떼기도 필요하다. 한창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살펴보다 몸이 잠깐 움찔했다. 아침마다 내리는 역이 다음 정차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옆에 사람들이 있는 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크게 웃을 뻔했다. 나도 모르게 하차하려고 엉덩이를 반쯤 들었다가 내렸기 때문이다. 습관이란 게 이래서 무서운 것이구나 또 한 번 깨달았다.

일단 서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같은 칸에 앉아 있던 42명을 살펴보았다. 남녀 비율은 엇비슷하다. 남자는 휴대폰을 보고 있거나 눈을 감고 있는 반면, 여자들은 죄다 휴대폰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 내가 타고 있는 객차 안에서 책을 펴 들고 읽는 사람은 없다. 솔직히 독서 중인 사람은 악수라도 청하고 싶을 정도로 찾아보기 쉽지 않다. 하긴 그런 모습에 대해 뭐라 하기도 그렇다. 막상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나 역시 휴대폰으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보며 휴대폰이나 보고 있는 사람으로 여기듯, 아마 나 역시 그들에겐 똑같이 비치리라.




오늘까지 총 두 번의 지하철 순례를 하면서 생각보다도 지하철 안에서 글을 쓰는 게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늘 사람이 앉아 있고 주변에 선 사람들도 적지는 않으나, 그 어느 누구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표면적으로는 과밀한 환경으로 보일 테지만, 철저히 독립된 공간 못지않을 정도로 개별적인 자유는 보장된다.

글을 쓰는 환경을 바꿔보고 싶다면 과감하게 지하철 안에서 글을 써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성격이나 집중하는 정도에 따라 그 효과는 천차만별이겠지만, 글도 쓰고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바로 지하철 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로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글이란 건 얼마나 많은 관찰이 뒷받침되었느냐에 따라 순탄하게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혹 주변에 지하철이 없다고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버스 안에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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