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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Mar 25. 2024

비에 젖은 책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이 오염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더 그럴 것입니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우산이 있으나 마나 할 정도로 비가 퍼붓던 날이었는데, 그래도 우산이랍시고 들고 있었으니 설마 했습니다. 집에 가자마자 가방을 열어봤더니 책이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요.


제 성격에 문제가 있겠지만, 저는 책이 조금이라도 오염이 되면 미련 없이 책을 버립니다. 그것이 얼마짜리든, 시리즈 중의 한 권이든 말입니다. 돈은 아깝지만 그래도 새로 삽니다. 음식물이 튀는 것도 적지 않게 불쾌하지만, 비에 젖어 나중에 다 마른 뒤에 책이 우글쭈글해져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화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들 녀석이 내일 낮에 부대로 복귀하는지라 남은 일 몇 가지를 해치우고, 가방을 둘러메고 뛰쳐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평소 같았다면 학교에 빼놓고 나왔을 겁니다.


애지중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녀석이 네 놈이나 들어 있더군요. 지금 기차 안이니 10분 정도만 비에 노출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오늘도 만약 저 녀석들이 비에 오그라든다면 참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매일 가방 옆에 우산을 꽂고 다닙니다. 사람들은 저보고 준비성이 철저하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책이 젖을까 봐 들고 다니는 겁니다.


잠시 후 기차에서 내리면 우산 각도를 잘 조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옷이나 신발이 젖어도 괜찮습니다. 다소 몸이 젖어도 상관없습니다. 책만 젖지 않으면 됩니다. 결국 오늘의 제 남은 미션은 집까지 네 권의 책을 고이 모셔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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