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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Mar 26. 2024

나이 든 사람

이백 아흔여덟 번째 글: 이런 것도 나비 효과일까요?

대구역에 내리자마자 부리나케 지하철 역으로 향합니다. 의외로 이 시간대의 지하철은 혼잡합니다. 늦은 퇴근길에 오른 사람도 있고, 번화가에서 시간을 보내다 귀가하는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는 시간대이기 때문입니다. 이 조용한 공간을 어지럽히는 몇몇 불청객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늘 있는 일이라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으나, 그럴 때마다 불쾌한 기분까지 감추지는 못합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봅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제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지하철 각 객차의 양쪽 끝엔 노약자 및 장애인 보호석 명목으로 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불문율 아닌 불문율인지, 어지간해서는 젊은 사람들은 앉지 않는 곳입니다. 금세라도 노인이 타서 자리가 있나 싶어서 두리번거리면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 마냥 황급히 일어서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난데없는 소음이 들려온 곳도 바로 그곳입니다. 술에 취한 나이 든 네 사람이 주변엔 아랑곳없이 떠들고 있습니다. 일행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역에 정차하면 모두가 같이 내릴 확률이 높으니까요. 그런데 서로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과 또 다른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자칫하면 제가 내릴 때까지 저 무지막지한 소음에 고스란히 시달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가 그 몰상식한 사람들한테 조용히 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술 취한 사람은 건드리는 법이 아니란 걸 제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 조용하던 지하철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문득 생각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나비 효과, 브라질에 있는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그 낱말 말입니다. 이런 것도 일명 나비 효과일까요?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승객들이 마치 자기는 손해 보기 싫다는 듯 저마다 소리를 높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소리를 높일까 말까 고민하는 듯하더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여기저기에서 데시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다른 객차 칸의 상황은 알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제가 타고 있는 칸은 어느새 시골 장터에 버금가는 분위기가 되고 맙니다. 저러니 어딜 가든 나이 든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덜 든 사람에게 외면을 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들어 많이 하는 생각입니다만,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지갑은 열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신의 지갑을 자신이 열지 않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어쩌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발 그 입은 좀 다물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 하면 안 되겠지만, 그런 입은 입이 아니라 바로 주둥아리가 되는 것이겠습니다. 그놈의 주둥아리 좀 닥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제가 내려야 할 역에 열차가 들어섭니다. 끝내 그 네 사람의 노인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무려 열한 개의 역을 정차하는 동안 말입니다.


누가 같이 있건 말건 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사람, 그것도 그들의 사생활을 미주알고주알 들려주려는 듯한 상식밖의 사람들을 만나면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되었나 싶은 생각마저 들곤 합니다. 게다가 이런 건 일종의 편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하필이면 나이가 든 사람임을 목격할 때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왜 이리 서글퍼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면 정말 저렇게 사람이 몰염치하고 몰상식해지는 게 당연해지는 것일까요?


사진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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