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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Apr 01. 2024

아이들의 거짓말

2024년 4월 1일 월요일, 흐림


선생님! 잘 생겼어요!

아침부터 생전 듣도 보도 못했던 말들이 교실을 떠나갈 듯했다. 더군다나, 나보고 멋있다는 말까지 다 한다. 한 술 더 떠서 어지간해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던 애들이 대놓고 얘기했다.

선생님! 사랑해요!

물론 아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다. 믿을 말이 따로 있지, 이 말들은 그냥 심심풀이로 해보는 말도 아니었다. 명색이 오늘이 만우절이랍시고 제 딴에야 그 나름의 기분을 내겠다는 듯 쉰소리를 끊임없이 해댔다. 농담인 걸 알지만, 또 거짓말인 걸 알지만, 긍정적인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쁠 리는 없다.


뻥이에요! 오늘 만우절이에요!

이 말만 안 했다면 조금은 더 기분이 좋을 뻔했지만, 그냥 그렇게 넘어갈 아이들은 아닌 것이다. 오늘 만우절이니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겠다는 투였다. 적어도 내 기억엔 그랬다. 만난 지 고작 한 달밖에 안 된 아이들에게 내가 굳이 오늘이 만우절이니, 애교 섞인 거짓말 정도는 해도 좋다는 말 따위를 했을 리가 없다. 거짓말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그 정도를 잘 지켜가면서 해야 한다는 말을 한 기억도 없다.


나 또한 학교에 이만큼이나 다녔으니 만우절을 모를 리는 없다. 학창 시절 16년에, 그것도 모자라 현직 교사생활 24년을 꼬박 채우기까지 했으니, 학교에만 무려 40여 년을 다닌 셈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어떻게 만우절에 대해 알고 있을까 싶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배웠기에 거짓말을 저렇게도 태연하게 즐기고 있나 싶었다. 마치 무슨 기념일이라도 된다는 듯 꼬박꼬박 챙기는 아이들이 신기할 뿐이었다.


이때 교사의 임무가 주어진다. 못 들었다면 모를까, 교실 여기저기를 떠다니는 거짓말을 그냥 간과할 수는 없다. 만우절의 기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만우절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두가 함께 한 번 웃고 즐길 수 있는 거짓말을 주고받으려면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어이 아이들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말았다. 내 자리에선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 데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래서 결국 나는 꼰대라는 걸 증명하고 만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만우절이라서 오늘 하루 동안 무수히 많은 거짓말을 들었지만, 정작 나는 한 마디의 거짓말도 하지 못했다. 뭐, 어떤가? 애교 있는 거짓말로 우리 아이들이라도 즐거웠다면 되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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