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권리
삼백 일곱 번째 글: 선거 공보를 보다가......
다음 주 수요일인 10일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뻔한 소리를 해보자면 각자에게 주어진 국민의 소중한 권리를 행사해야 하는 날이지요. 한편 이 날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 날입니다. 총선 이외에 무슨 의미가 더 있는 날일까요? 바로 쉬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어제저녁에 아파트 앞마당 쓰레기를 내다 버리러 내려갔다가 우편함에 선거 공보가 꽂혀 있는 걸 봤습니다. 일단 제일 먼저 이 공보가 집집마다 뿌려진다면 과연 얼마나 막대한 예산이 쓰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싸게 추산해도 수십 억은 족히 들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문득 이게 이렇게까지 뿌려대야 하나 싶었습니다. 나가면 선거 후보자 벽보를 볼 수 있고,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안에서도 얼마든지 열람이 가능한데 말입니다.
다음으로는 아무리 살펴봐도 찍을 만한 者이 없다는 겁니다. 지긋지긋한 색깔 타령, 빨간색은 파란색을 욕하고, 파란색은 빨간색을 비난합니다. 원래 저 자리에 가면 모두가 저렇게 되는 모양인데, 마치 자기들만이 이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이 시대의 마지막 사도라도 되는 듯 행세합니다.
제가 사는 지역은 대대로 2찍이 들의 세상입니다. 어지간해서는 다른 색깔이 명함도 못 내미는 곳입니다. 과연 그렇게 해서 우리가 국회로 올려 보낸 그들이 우리 지역의 여건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 얼마 만한 도움을 주었을까요? 평소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다가 마치 일수 찍기라도 하는 듯 선거 때만 되면 내려와 국민을 찾고 지역 주민을 연호합니다. 그런 생각과 태도를 갖고 있는 후보들을 걸러내라고 있는 게 선거겠지만, 좀처럼 그런 기대는 할 수 없습니다.
한편, 2찍이들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하는 말도 들립니다. 그렇다면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한 그들이 있어서 나아진 건 뭘까요? 그 어느 것 하나도 좋아진 것이 없는데, 언제까지 1찍이, 2찍이 타령만 하고 있어야 할까요? 경상도 사투리로 가가 야 같고 야가 가 같은데 어찌해야 하는 걸까요?
사실 고민은 됩니다. 1찍이도 싫고 2찍이도 싫어서 그나마 조금은 더 참신해 보이는 후보에게 투표를 하려니, 어딘지 모르게 그냥 표를 내다 버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제 투표 경험이 그걸 증명해 왔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3찍이, 4찍이, 5찍이 등을 고수해 봤자 제 소중한 권리를 행사한 보람이 없더라는 얘기입니다.
곧 있으면 민주 시민으로서의 소중한 권리인 한 표를 행사해야 합니다. 그냥 그날은 주중에 끼인 쉬는 날이라고 생각하며 보내기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者을 찍어야 할지 고민입니다. 지금까지 그 정도의 안목도 갖추지 못한 제 소양이 무엇보다도 문제겠으나, 매번 이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이 나라의 정치 풍토도 마음에 들지 않긴 매한가지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적극적인 침묵과 냉담의 반응을 보이는 것도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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