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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02. 2024

허공 휘젓기

0660



글 쓰는 것은 허공을 휘젓는 것과 같아서

손에 펜을 쥐고서는 어지럽게 누벼보지만

마음을 흔들기나 하고 공백을 채우지도 못하네.


이리저리 마구 젓다보면

어디 하나 걸려드는 문장이 있으려나 기대하지만

어설픈 흔적들만 남기고 어수선해지만 하네.


채울 공간이 많은 것이 이렇게 자유롭지 못하고

시작할 지점이 무수한 것이 이렇게 공포스럽고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것이 이렇게 저주스럽다니!


남의 글이 더 늘씬해 보이고 우아해 보이는 것은 바라보는 각도 때문일 거라고 위로해 보지만

매 순간마다 쏟아지는 남의 글들은 어찌나 보드랍고 매끈한지 쓰다가 만 내 글을 서랍에서 꺼내다가 다시 닫는다.


그동안 무수히 내가 허공에 대고 휘저은 것이 펜이 아닌 봉이었다면 차라리 멋진 지휘자가 되었을 것이다.


지휘봉의 끝에서는 잉크가 묻어 나오지 않으니 작가보다 덜 좌절할 것 같다.


글 쓰는 것은 허공에 대고 칠을 하는 어리석은 페이트공과 같아서 머릿속의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펜 끝으로 전하기 위해 수만리 길을 헤맨다.


늘 다다른 곳은 계획한 곳과 사뭇 다르고 엉뚱해서 실망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이러려고 내가 글을 쓴 거지
이 맛에 글을 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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