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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pr 03. 2024

삶이 과태료

긍정으로 살아 볼게요

숨통을 틔워보려는 삶의 방식이 왜 이리도 험난할까요. 영화, 여행, 커피를 위한 저의 태도가 너무 과한가 반성합니다. 과태료, 검소하게 살고 있다 만족하다가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곤 합니다.




십 센티였다고요


1월 말 금 밟은 게 왜 4월 초에 왔을까 보니 제 구역을 벗어나 남의 구역에 갔었더군요. 체험하고 살아내는 두 세계 사이에서 작은 고민을 안고 영화 보러 거기까지 갔던 거예요. 위반 딱지 사진이 세장이나 붙어 있어서 눈으로 빔 쏘으며 자세히 보았더니 횡단보도 딱 십 센티 슬쩍 닿은 듯 제 차가 서 있더군요. 누군가 열폭해서 사진으로 올린 거였어요. 우리 동네 위반 딱지는 일주일도 안 걸리는데 다른 동네 과태료는 두 달 동안 오더군요. 겨울 끝에서 봄을 따라 따뜻하게 왔겠어요. 십 센티 잘못이라도 인정해야죠. 할인도 해준다니 기뻐하기로 했어요. 어느 구석에서 세금 되어 빛으로 쓰이길 바랍니다. 그날 전 가장 비싼 영화 한 편을 본 거더군요.


자리가 없었다고요


1박 2일 여행길, 일 마치고 빠듯한 시간 따라 기차역에 도착했어요. 만차랍니다. 입구 양 옆 빼곡하게 차례를 기다리는 자동차 광경에 이십 분쯤 남은 기차 시간이 제 애를 다 닳게 했어요. 속 끓이며 고민하다 길가에 그냥 두기로 했어요. 저 앞쪽에 파출소라 득달같이 붙이겠죠. 빨강 낙서 과태료 딱지보다 기차 시간 늦을까 노심초사했어요. 조수석 친구의 황당하단 눈빛을 가볍게 제압하고 벌써 저는 기차로 달음박질합니다. 기다란 기차는 여행지로 금세 내빼서 길 가에 버려진 제 자동차는 기억에서 홀연히 사라졌어요. 다음 날 돌아오니 이미 예정된 과태료 딱지가 낯설지 않고 다정하게 절 반겨요. Hi, I'm back! 어머, 또 할인? 송금 완료합니다.


커피가 고팠다고요


새벽을 달리다 커피가 고프면 대책 없어요. 눈앞이 흐릿하고 차 안이 후텁지근하거든요. 그럴 땐 도로길가 표식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어요. 도롯가에서 한참 깊숙한 별다방에 들러 커피 향 행복에 겨워 차로 돌아오니 그 새벽에 벌서 누가 끈적거리는 빨강 과태료 딱지를 붙였더군요. 눈물이 그렁그렁. 여전히 커피를 입에 물고 얼마간 멍하니 서서 과태료 글귀를 모조리 다 읽어요. 노란 실선은 과태료가 어마어마하단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곤 풋풋풋 헛웃음을 하고 맙니다. 커피가 반드시 더 맛나야 했어요. 차에 올라타자마자 새로운 경험의 값을 기록합니다. 저의 지독한 커피 갈증을 풀어준 새벽맛의 그 커피는 제 생애 가장 비싼 모닝커피가 되었어요.




가난해도 긍정긍정, 뭐 그게 저니까요. 최근 과태료 3종 세트를 신호등 삼아 요즘은 차분하게 살펴보며 주차합니다. 이제는 철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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